고유가 시대 … 원전에 힘 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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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차 오일쇼크가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1973년. 천정부지로 뛰는 국제 유가는 개발도상국이던 한국에 큰 충격파를 주었다. 물가가 치솟고 살림살이는 팍팍해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원자력발전소를 본격적으로 짓기로 결심한다. 고리 1호기를 착공한 상태에서 추가로 5기의 원전 건설 계획을 확정했다. 본격적인 원전시대는 이렇게 열렸다. 78년 4월,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의 첫 상업발전이 이뤄졌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08년 6월.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제 유가 폭등으로 ‘3차 오일쇼크’ 우려가 커지면서 원전을 더 짓자는 논의가 퍼지고 있다. 미국·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유가 폭등은 전 세계적으로 원전 확대에 불을 지폈다.

◇세계 6위 원전 강국=지난 30년간 한국의 원전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국은 현재 원전 20기(설비용량 1만7716㎿)를 보유한 세계 6위의 원전 강국으로 도약했다. 추가로 8개의 원전을 더 지을 계획이다. 현재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의 36%를 원전이 맡고 있다.

원전은 경제성이 뛰어나고 환경 오염이 적은 게 장점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시간당 1㎾의 전기를 생산할 때 들어가는 비용은 원전이 34원에 불과하다. 석유는 105원, 액화천연가스(LNG)는 86.8원이다. 한국수력원자력 김종신 사장은 “우라늄(235) 1g이면 석유 9드럼 분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원자력발전이 총 2조㎾h의 전기를 생산해 석유 대비 155조원, 가스 대비 247조원의 원가 절감을 이루었다. 원전은 친환경적이라는 점도 매력이다. 국제원자력기구가 발전원별 이산화탄소 배출량(g/㎾h)을 분석한 결과 원전은 9g에 불과했다. 석탄(968g), 천연가스(440g), 석유(803g)보다 상당히 적다.

◇“원전 확대 불가피”=에너지경제연구원 김진우 박사는 “지금처럼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강해지는 시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은 원전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원전은 90년대 말까지 크게 늘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반대 여론이 거세 주춤하고 있다. 그는 “현재 총발전설비 중 26%를 차지하는 원전의 비중을 2030년까지 37~42%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가동 중이거나 짓고 있는 28개의 원전 외에 2030년까지 9~13개의 원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고유가 시대를 이겨내기 위해서 앞다퉈 원전 추가 건설을 검토 중이다. 일본은 2020년까지 석유 의존도를 현재의 50%에서 40%로 낮추기 위해 원전을 11기 더 건설하기로 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2030년까지 10기 이상의 원전을 세우는 것을 추진 중이다. 원전이 없는 이탈리아도 원전 건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넘어야 할 산도 많아=문제는 원전에서 대형 사고가 나면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주민과 시민단체의 저항이 만만찮은 이유다. 이유진 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팀장은 “지금도 크고작은 원전사고가 발생하는데 우리는 원전을 감시하고 통제할 독립적 기구가 별로 없다”며 원전 확대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원전을 추가로 짓기 위한 부지와 비용 확보도 쉽지 않다. 2003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건설을 추진하다 주민 반대로 실패한 ‘부안 사태’가 그 예다. 여기에 원전 1기를 짓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2조5000억원 정도 든다. 한수원 최교서 팀장은 “민간의 투자를 끌어들이는 등의 다각적인 재원 마련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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