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과거청산과 政爭의 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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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재 우리 정치는 두 갈래로 전개되고 있다.하나는 과거청산이란 거룩하고 도덕주의적인 정치고,다른 하나는 「나 살고 너 죽이기」식의 저급(低級)한 정치투쟁이다.문제는 거룩한 작업과 저급한 투쟁이 별도로 진행되지 않고 뒤섞여 뒤범벅된 채로 진행된다는데 있다.그래서 오늘의 정치모습은 혹은 거룩했다가 혹은 저급하고,혹은 찬사를 받다가 혹은 비난을 면치 못하는 2중적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보통사람들로서는 적잖이 헷갈린다.잘한다고박수를 치다가도 실은 정치가 더 나쁘게 돌아가는게 아닌가 하는의구심에 사로잡힌다.과거청산은 좋은데 야당을 원색공격하는 강삼재(姜三載)신한국당 사무총장을 보면 여당이 다 잘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全씨 구속엔 압도적 지지를 보내지만 새벽에 합천에 들이닥친 전격구속 방법에 대해선 다른 말이 많다.돌연 터져나오는 발표내용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발표방식이 너무 충격적이라는 불만도 많다.
야당은 야당대로 과거청산을 찬성한다면서도 수사결과를 불신하고,청산방법에 이의를 달고,청산추진 의도에 끊임없이 의심을 보내고 있다.이런 의심과 불신이 결과적으로 청산작업의 발목을 잡게되고 야당의 청산의지를 의심스럽게 한다는 비난도 있지만 이런 야당의 움직임은 대체로 「나살기」와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청산정국에서 야당이 「결사항전」을 부르짖는 것을 보고 야당지지자들이 과거청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하다.과거청산을 할수록야당이 불리해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은 없는 것일까.
과거청산이란 것이 여당에 유리하고 야당에 불리한 것일 수가 없는데도 정치판의 모습이 자꾸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같다.
이처럼 지금 과거청산을 둘러싸고 총론(總論)찬성-각론(各論)반대,목표지지-방법이견의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명분뒤에 감춰진저의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과거청산이 정쟁(政爭)과 맞물려 시대적 대의(大義)라는 본뜻이 정치세력간의 「죽고 살기」로 왜곡.저질화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과거청산이 더 나은 정치를 가져온다는 확신을 주고 여야를 떠난 국민적 지지를 얻어 야 성공할 수 있을텐데 실은 그렇지 못한 데서 갖가지 2중적 현상도 빚어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막자면 이제부터라도 누구나 납득할 원칙과 기준위에서 청산이 추진된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그러자면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이 청산작업에서 사(私)와 사(邪)가 없어야한다는 점이다.흔히 말하는 국면전환용.총선전략용 이 돼서도 안되고 미운 쪽은 조지고 내편은 봐준다는 식이 돼서도 청산의 본뜻은 사라지고 만다.청산의 대상이 현재의 편가르기와는 상관이 없어야 한다.
다음으로 여야 할 것 없이 각진영 스스로도 일정한 자기희생을각오해야 한다.지금 각 정당은 저마다 「과거」를 끌어안고 있다.자기의 것은 그대로 두고 밖으로만 청산을 외쳐서는 말이 안된다.어떤 형태로든 스스로의 과거를 청산하는 모습 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집권측은 특히 청산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비난여론을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세상에 끝없는 청산이란 불가능하고 일정한 한계를 그을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불만여론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일부의 불만이 있더라도 감수하면서 이 선(線)에서 참읍시다고 국민에게 호소하고 끌고가는 지도력을 보일 수있어야 하는 것이다.
세번째 말하고 싶은 것은 엄격한 법논리의 확립이다.법은 어디까지나 법이라야지 정치에 따라 왔다갔다 해서는 안된다.청산도 중요하고 법치(法治)도 중요하다.아무리 미운 놈이라도 법으로 안되면 처벌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그래야 청산당하 는 측도 승복할 수 있다.최근 법리(法理)의 고무줄현상이 보였는데 세상이무너져도 굽히지 않는 법률가상(像)이 절실하다.
최소한 이런 세가지 정도의 원칙이 존중돼야 과거청산을 정쟁에서 분리시킬 수 있고 국민적 지지위에서 성공적 결실을 얻을 수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청산속에 너 죽이기가 있고 청산보다는나 살기가 급하다는 상황으로 만들어 나가면 죽 이지도 못하고 청산도 못하고,살지도 못하고 청산도 못하는 결과가 될 공산만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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