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유 170달러 땐 유가 대책 전면 재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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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다음 기회로 미뤘다. 8일 고유가 대책엔 유류세 인하가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유가가 계속 올라 배럴당 170달러(두바이유 기준) 정도가 되면 유류세 인하를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런 (유가가 배럴당 170달러를 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때가 오면 유가 대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며 “유류세 인하까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유류세 인하는 모든 소비자가 일률적으로 혜택을 보게 된다는 점에서 수혜 범위가 넓은 강력한 대책이다. 그러나 소득이 많든 적든 똑같은 혜택이 돌아가고, 세수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문제가 있다. 한번 내리면 올리기가 쉽지 않고 유가 상승기엔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점도 단점으로 거론된다.

정부가 당분간 유류세를 내리지 않기로 한 것은 현재로선 장점보다 단점을 더 크게 보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유류세 인하는 에너지 사용 절감 원칙과 상충되고, 대형차 소유자 등 유류 소비가 많은 계층에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3월에 유류세를 10% 내렸지만 그 뒤 유가가 치솟으면서 경유값은 11일, 휘발유값은 한 달 만에 유류세 인하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반면 세금 환급은 정부 지원이 절실한 계층을 선별적으로 직접 지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엇갈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임경묵 박사는 “국제 유가가 오르면 국내 유가도 따라 오르면서 수요가 줄어야 하는데, 세금을 내리면 가격 구조가 왜곡된다”며 “세금 인하를 미룬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말했다. 반면 유류세를 인하해야 중산층 등 좀 더 광범위한 대상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홍창의 관동대 교수는 “이미 유가가 국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오른 마당에 고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유류세를 내릴 수 없다는 얘기는 한가한 소리”라고 말했다.

경유값 급등과 관련, 정부는 2004년 발표했던 휘발유와 경유값 비율 100 대 85를 지켜 달라는 경유 사용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국제 경유값이 휘발유값보다 큰 폭으로 오른 상황에서 4~5년 전 상대가격 기준을 지키기 위해 경유세를 인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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