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하 기자의 주주클럽] 버핏·로저스처럼 올인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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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두 달 전 원자재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를 인터뷰할 때다. 분산 투자 비법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그래서는 절대 큰돈 못 번다”고 답했다. 대신 “전망이 밝은 회사·산업·국가에 집중 투자하라”고 권했다. 말이 좋아 집중 투자지 결국 ‘몰빵’하라는 얘기다. 투자의 달인이라는 워런 버핏은 한 술 더 뜬다. “분산 투자는 무식에서 오는 위험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투자자는 헷갈린다. 지금이라도 당장 주식·펀드 다 팔아 한 곳에 몰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먼저 알아 둘 게 있다. 로저스는 상품 투자에 앞서 22개월 동안 오토바이로 52개국을 여행하며 거리에서 투자 정보를 캤다. 중국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도 현장이었다. 버핏은 온갖 화장술로 치장한 기업 회계장부에서 ‘진주’를 캐내는 탁월한 선구안을 가졌다. 게다가 그는 “10년간 주식시장이 문을 닫았다 열어도 내 투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할 만큼 장기 투자자다. 이 정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괜히 두 사람을 흉내 내려 들었다간 가랑이 찢어지기 십상이다.

로저스나 버핏을 따라잡을 자신이 없다면 분산투자가 가장 안전한 길이다. 하지만 이마저 쉬운 건 아니다. 동화에 등장하는 소금장수와 우산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는 비가 오든, 안 오든 마음 고생을 한다. 그래도 위험 분산만큼은 확실히 돼 있다. 그게 아니라 첫째는 우산장수, 둘째는 장화장수라면 어떻게 될까? 하나마나 한 소리를 왜 하느냐고 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펀드 투자자 중에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 브라질·러시아·중동 펀드에 각각 돈을 나눠 넣은 사람이 딱 이런 경우다. 기껏 분산한다고 했지만 실은 고유가에 올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 곳 모두 원자재 가격에 따라 출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펀드를 든 사람이 분산을 한다며 국내주식형 가운데 중국 관련주 비중이 큰 상품을 고른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장형 국내주식 펀드 여러 개에 가입하는 것보다는 가치·배당주 펀드와 섞는 게 투자 위험이 줄어든다. 국내외 주식형에만 분산하는 것보단 주식·채권형으로 나누는 게 효과가 더 크다. 물론 수십 년 묵혀도 되는 돈이라면 이것 저것 잴 필요 없이 장기 전망이 밝은 소수 주식에 투자하는 게 맞다. 회사 고르는 눈에 자신이 없다면 인덱스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면 된다. 하지만 이때도 분산이 필요하다. 재산의 대부분을 이렇게 오래 묶어둘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가 불안과 경기 침체 우려로 지구촌 곳곳에서 다시 앓는 소리가 나온다. 내 재산, 제대로 분산했는지 한 번쯤 점검할 시점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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