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특별법 졸속 안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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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11.24 5.18특별법제정지시는 12.12와 5.18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이땅에 정의와 진실,그리고 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검찰은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전인 지난달 30일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그 이틀만에 1차 소환에 불응한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을 사전구속영장을 받아내 서둘러 구속했다.군사반란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유공을 내세워 기소유예 했고, 또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렸던 바로 그 검찰에 의해서였다.
특별법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없이 5.18문제를 풀지 않고는역사청산도,민주발전도 요원하다는 국민적 공감대 때문이었다.金대통령의 5.18특별법 지시는 국민적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따라서 특별법제정은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가에 대한 천착에서 출발해야 한다.
최근 민자당의 특별법안 대강이 드러났다.「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등에 관한 특례법」이라는 법안에는 전문 5조 부칙 2조로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재정(裁定)신청에 관한 특례」「재심에 관한 특례」등이 규정돼 있다.그동안 재야와 야당에서 줄기차게 요구하는 특별검사제나 희생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사항등은 짐짓 비켜가는 인상이다.여기선 특별법의 가장 중요한 법리문제인특별검사제와 공소시효에 관한 것만 비교해보자.
국민회의.민주당.자민련등 야3당은 특별검사제 도입을 고집하고있다.대통령의 지시 한마디에 우왕좌왕하는 검찰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그러나 특검제가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제도이므로 우리식에 맞는 재정신청제도를 특 별법에서 수용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특검제를 채택한 것과 같은 실효를 거두자는 여당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그러나 재정신청제도의 취지가 공소유지를 위한 것에 국한하는 것이므로 특별법이 추구하고자 하는진상규명을 위한 수사에는 미치지 못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구나 재정신청제도를 특별법에만 도입할 것이 아니라 차제에 형사소송법의 개정으로 현재 법조계와 학계에서 주장해온 재정신청제도의 확대를 도모함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적어도 재정신청제도가 있었다면 종전 검찰의 불기소결정에 대해 고소. 고발인에게도불복(不服)의 길이 있었겠기 때문이다.
다음 공소시효 문제는 오히려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자민련이 주장하는 헌재(憲裁)결정을 존중하자는 주장을 제외하고는 여야의 법안이 모두 대통령의 재직기간 중에는 내란.외환.군사반란죄등의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것으로 일관 돼 있다.다만「헌정질서 파괴범죄」외에 국제법상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도공소시효제도의 적용을 배제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이것은아직도 법리상 논쟁의 여지가 있으므로 타협여하에 따라서는 비켜갈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문제는 특별법에 이러한 공소시효 정지의 선언적 규정을넣는다고 해서 그동안 헌재 안팎에서 비등하던 위헌시비를 잠재울수 있을지는 미지수다.필자는 지금이라도 검찰이 고소.고발인의 헌법소원 취하에 부동의(不同意)함으로써 헌재의 결정을 받아 수사를 재기하는 것이 절차상 순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그래야검찰이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하고 새로운 검찰상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고,국회의 특별법제정에 있어서도 위헌시비를 씻을 수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여야는 각자 독자안을 고집하지 말고 상호협의해 통합안을 만드는 노력에 나서야 한다.모처럼 국민적 합의로 역사의 새 물꼬를열 작정이라면 지엽적인 법리술수(術數)나 졸속입법은 금물이다.
이번 회기내 통과에 너무 매이지 말고 각계의 의 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는 공청회등을 열어 위헌시비를 씻어내면서 다시 임시국회를 여는 한이 있더라도 너무 서둘지 말기 바란다.역사청산과 민주발전일수록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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