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담장 그림에서 느끼는 옛사람의 마음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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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경남 하동군 쌍계사의 대웅전 꽃담. 꽃 한 송이가 예쁘게 핀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담 자체가 한 편의 서정시요, 설치미술이다.

우리동네 꽃담
이종근 글, 유연준 사진
생각의 나무, 304쪽, 1만2500원

담은 구분이다. 나와 너를 나눈다. 인간과 자연을 가른다. 그래서 담을 허물자고 한다. 그런데 상식을 뛰어넘는 담이 있다. 꽃담이다. 말부터 참 예쁘다. 꽃담에는 꽃은 물론 글자·동물·무늬 등이 들어간다. 옛 우리 가옥(건물)의 담장·벽체·굴뚝 등을 통칭한다.

꽃담은 소통이다. 집주인의 성품을 드러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초청한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도 소망한다. ‘여기는 내 땅이야’ ‘타인 출입금지’ 식의 엄포가 없다. 질박하면 질박한 대로, 화려하면 화려한 대로 여유와 만족을 안다. 우리네 조상들의 마음씨를 빼닮았다. 속도와 경쟁에 정신을 앗긴 우리가 청맹과니처럼 스쳐 보냈을 뿐이다.

『우리동네 꽃담』은 반갑다. 물론 기왕에도 관련 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인이 알기 쉽도록 꽃담의 구석구석을 보여준 적은 많지 않았다. 매끈한 문장과 공들인 사진도 눈에 띈다. 궁궐·사찰·양반집·민가 할 것 없이 담벽·굴뚝 하나 만들 때도 아름다움을 생각했고, 조화와 상생을 되새겼던 옛 사람들의 마음씨가 한눈에 들어온다.

꽃담의 재료는 별난 게 없다. 흙, 돌멩이, 전돌(벽돌), 기와 정도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도 그 안에는 온 세상이 담겼다. 봉황·박쥐·대나무·불로초부터 국가와 개인의 안녕을 비는 수(壽)·복(福) 글자, 그리고 각종 문양까지. 현재 지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는 지은이는 지난 10년 전국에 산재한 꽃담을 찾아 다녔고, 이번에 그 의미와 상징을 우리 앞에 자상하게 펼쳐 보였다.

책은 크게 서울·경기도, 충청·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네 부분으로 나뉘었다. 경복궁 아미산 굴뚝부터 경북 성주군 한개마을 토속담까지 전국 30여 곳의 꽃담을 옮겨놓았다. 눈길이 가는 대로, 손길이 머무는 대로 읽으면 된다. 굳이 목차를 따를 필요가 없다. 어느 쪽을 펴든 눈이 즐거워지고, 마음의 넉넉해진다. ‘전통의 힘’을 만끽할 수 있다.

“책을 비스듬히 쌓아놓은 듯한 기와무늬에 중간중간 수키와를 한 쌍씩 맞대 모두 여섯 쌍이 모여 꽃 한 송이를 만들어냈다. 좌우가 비례대칭이듯 남녀노소, 빈부격차, 인종차별을 모두 극복하는 노력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라는 꽃담의 가르침이다.” (쌍계사 대웅전 뒷담)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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