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안데스 산맥에 사는 비쿠냐는 라마의 사촌쯤 되는 동물이다. 털이 가늘고 가벼워 현존하는 동물의 것으로는 가장 얇게 실을 뽑을 수 있다. 부드럽고 가벼워 최고급 의류에 많이 쓰인다. 1960~70년대 5000여 마리에 그쳐 멸종 위기에 처했던 비쿠냐가 스타일 기업의 환경 보전 노력으로 15만여 마리까지 늘어났다. 사진은 페루의 안데스 산맥에서 비쿠냐 떼가 이동하는 모습. [로로 피아나 제공]
#다시 살아난 비쿠냐
비쿠냐 섬유로 만든 케이프. [로로 피아나 제공]
“비쿠냐 살리기를 시작한 지 올해로 15년째다. 5000마리에 불과했던 것이 지금은 15만 마리로 불어 났다. 최대 서식지인 페루에서 비쿠냐를 키우는 사람들, 페루 정부 모두의 노력이 이뤄낸 결과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는 캐시미어나 울 같은 최고급 천연 섬유로 최고 품질의 원단을 만드는 회사다. 고대로부터 ‘신의 섬유’라 불리는 비쿠냐로 만든 원단도 물론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내 아버지 프랑코 로로 피아나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1960~70년대 비쿠냐는 멸종 직전이었다. 밀렵과 무분별한 포획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76년 ‘멸종 위기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으로 보호되기 시작했고 94년부터는 페루 농민, 페루 정부, 로로 피아나 3자가 협약을 맺고 더욱 적극적으로 이를 살려냈다.”
최고급 원단을 만들기 위해 희귀 동물을 살려내야만 했다는 이야기에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독일 기자가 물었다. “비쿠냐는 보호하지만 다른 동물의 가죽이나 모피 사용에 대해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환경과 스타일의 선순환
세르지오 회장은 “가죽과 모피 모두 국제적 협약과 각국의 적법 절차에 의해 유통되는 것만을 쓴다. 게다가 우리의 강점은 털을 깎아 질 좋은 원단을 만드는 비쿠냐, 캐시미어, 울이다.”고 말했다. 핵심을 살짝 비켜간 답변이었다.
“결국 최고급 원료를 독점하고 싶어 그런 것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세르지오 회장은 솔직하게 답했다. “94년 처음 페루 정부와 협약을 맺을 때 국제적인 업체들이 모두 참가했다. 우리가 가장 높은 가격을 써 냈기 때문에 10년 동안 독점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엔 서식지 보호와 개체수 보존이라는 조건도 명시됐다. 우린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실행했고, 환경 보호라는 측면에선 분명히 성공했다. 정확한 금액을 밝힐 순 없지만 투자한 것보다 이익을 더 많이 내고 있진 않다. 애초의 동기는 ‘멸종 위기 동물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을 뿐이다. 이 목표는 경제적인 관점, 애널리스트의 접근 방식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린 여기서 무형의 자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고급 원단의 소재를 얻는게 사실이지만 이 보다는 환경 보호라는 원칙과 이를 통해 우리 브랜드에 더해지는 가치 말이다.”
그는 수익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15년 동안이나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은 이유가 ‘무형의 자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기자가 물었다. “왜 그렇게 환경에 신경을 쓰나.”
로마=강승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