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쟁점진단>학계 시각-왜 5.18특별법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반민족 특별법」 만큼이나 의미있는 결정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학계에서 보인 반응.지난 7월 이후 학.법조계,시민.노동단체가5.18특별법 제정을 주장하고 나서 이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대두된 바 있다.
그러나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비자금 정국」으로 이 문제는 주변화하는듯 했으며,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金대통령의 지시는 이 문제를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 등장케 했다.물론 「대선자금」에 대한 야당의 공세를 회피하기 위한 국면전환용이라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어떤 의도에서든 한국의 모든 정치세력이 엮여 있는 5.18문제의해결은 한국정치 지형상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교수는 『박정희(朴正熙)의 개발독재와전두환(全斗煥).盧 전대통령의 권위주의는 명백히 그 역사적 성격을 달리한다』고 설명한다.朴정권의 개발독재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경제개발이라는 당시의 역사적 전망을 담고 있었 다는 것.
반면 『5,6공이 그 이후의 시대적 과제인 「민주화」의 요구를 물리적으로 좌절시켜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할 수밖에 없었으며,그 기점이 바로 5.18』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盧전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밝혀지고 있는 부패.정경유착과 같은 비 민주적 현상의 척결도 5.18로 소급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金대통령이 왜 5.18특별법 제정을 결단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그 설명을 위해서는 「비자금 정국」에 대한 보다 거시적이고 객관적 분석이 요구된다.
비자금이 폭로되자 그 의도를 둘러싸고 여러 설(說)이 제시됐으나 어떤 경우든 이 사건의 확대에는 金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이개입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金대통령의 주관적 의도가 항상 그대로 현실화하는 것은 아니며,경우에 따라서 는 의도와 전혀 다른 「객관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난 15일 민교협(民敎協)월례발표회에서 서강대 손호철(孫浩哲)교수는 「비자금 정국의 의미와 전망」이라는 발표를 통해 주관적 의도와 별개로 이 사건이 가져올 「역사적 의미」를 분석해관심을 끌었다.이날 孫교수는 이 사건으로 인해 정치와 경제의 관계가 보다 효률적으로 재편될 것으로 분석했다.孫교수는 금융실명제.토지초과이득세에 이어 정경유착이 아닌 경제적 요인에 의한경쟁구조의 확립,정치비용의 축소 등 정치-경제의 관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현재의 「비자금 정국」은 양자의 관계를 조정하는 국면이라는 것. 이러한 조정은 한편 기존의 정치권에도 일정한 정도의 합리화를 가져오게 마련이며,金대통령으로서는 현재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의 합리화를 강제당하고 있었다고 볼 수있다. 정치권의 합리화에 가장 핵심적 고리는 물론 모든 정치세력이 엮여있는 5.18 문제일 수밖에 없다.
***예측된 5.18특별법 이런 이유로 「비자금 정국」을 「치킨 게임」(공멸을 위협하는 게임)으로 표현한 孫교수는 金대통령이 의외로 5.18특별법 제정을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었다.이러한 예측은 金대통령이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면서 김대중(金大中)국민회 의 총재의 「지역카드」와 진보세력의 金대통령에 대한 공세를 함께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바로 5.18특별법 제정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
그러나 낙관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어떤 정치세력도 분명한 도덕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실상 특정 지역내의 일당독재인 지역주의에 기반한 세력들 사이에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 진상을 규명하고 그것에 적합한 법률적 판단을 내리기에는 수많은 기술적 문제들이 내재하고 있다.「특별검사제 도입」을 둘러싸고 이미 이견이 대두하는데서 알 수 있듯 경우에 따라 이런기술적 문제로 본말(本末)이 전도되는 상황도 있 을 수 있다.
***새정치 모델 나와야 충북대 사회학과 서관모교수는 『이 사건이 정치집단 내부의 재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확대를가져오게 될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진단한다.이 법이 시민들의 참여에 의해서라기보다 국민의 요구를 선취해 기존의 정치권의 안정화를 꾀하는 일종의 「수동혁명」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라는 것. 물론 시민들이 어떻게 개입해 들어가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비록 정치권 내부의 세력관계가 재편되는 과정이라 하더라도 시민운동의 민주적 개입이 적절히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는 달라진다.그러나 시민들이 민주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을찾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교수는『이제 시민운동도 「영향의 정치」에서 「실현의 정치」로 나아갈 때』라고 주장한다.이와 관련,시민운동-정치운동의 2분법을 벗어나 시민들의 일상적 참여정치가 가 능한 새로운 정치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주목할 때가 됐다.
김창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