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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비로 뛰쳐나온 미술 서울의 표정, 예술을 입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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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울 을지로변 을지로2가 네거리의 ‘101 파인 애비뉴’ 공사 현장에 설치된 가림막. 길이 493m·높이 6m의 가림막에 소·낙타·염소·산양 등 우제류(偶蹄類) 20여 마리의 부조 조각을 붙였다. 조각가인 서울대 미대 신현중 교수의 작품이다. 일몰 뒤에는 야간 조명도 하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흥국생명 건물 1층 로비에 전시된 조각가 강익중씨의 작품 ‘콜로뉴 파고다’를 한 시민이 아이와 함께 관람하고 있다. 이 로비에선 국내외 현대작가 10명의 설치미술·팝아트 작품을 모은 ‘현대미술 특별전’이 7월 31일까지 열린다. [사진=김태성 기자]

매일 버스로 출퇴근하면서 서울 남산1호 터널을 통과하는 회사원 강모(37·서울 서초구 잠원동)씨에게는 습관이 하나 생겼다. 터널 인근 을지로2가 네거리에 있는 건물 신축 현장의 공사장 가림막을 구경하는 일이다. 길이 493m에 높이 6m의 가림막은 온통 붉은색이다. 중앙에는 흰색으로 낙타·소·염소·산양 등을 형상화한 부조 20여 점이 붙어 있다. 해 지고 뜰 때까진 아크릴 소재의 부조 속에서 조명도 들어온다.

이 가림막은 서울대 미대 신현중(조소과) 교수의 ‘우제류를 위하여’라는 작품이다. 고기·가죽·젖·뿔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은 우제류(偶蹄類·발굽이 짝수인 동물)를 소재로 환경과 생태의 소중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이 서기 전까지 이곳에는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중충한 가림막이 있었다. 신 교수는 “북한산·남산·청계천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사장에서 잘 꾸민 가림막은 도심의 갤러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표정이 바뀌고 있다. 멋 없고 천편일률적이며, 건설회사 로고만 잔뜩 집어 넣은 가림막 대신 미술작품을 연상케 하는 가림막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건물 로비가 ‘열린 갤러리’로 변신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공공미술이나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2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한국일보 자리의 공사현장. 한일건설이 17층짜리 쌍둥이 빌딩을 짓는 이 공사장은 전통 황토 담장을 디자인한 가림막에 둘러싸여 있다. 공사장 출입문에는 창호 문살을 그려 넣었다. 경복궁·인사동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놓고 있는 지역적 특성을 감안한 디자인이다. 가림막에는 화가 윤영철씨의 한국화 작품 4점이 대형으로 인쇄돼 있다.

“평범한 가림막 같으면 스트레스를 주잖아요. 그런데 저기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초가집이며 황소 좀 보세요. 매일 보는데도 싫증이 안 나고 눈이 즐거워요.” 공사 현장과 길(사직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종로문화원 최용주(62) 사무국장의 말이다.

한남대교 북단에 있는 일신방직의 사옥 현장(용산구 한남동)은 가림막에 바코드가 그려져 있다. 바코드에 있는 줄무늬에 색깔을 집어 넣어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준다. 공사장 가림막 작업을 많이 해온 양주혜씨의 작품이다. 광화문 복원공사 현장에는 설치미술가 강익중씨의 작품 ‘광화문에 뜬 달’이 설치돼 있다. 서울 반포주공 2, 3단지 공사장도 가림막에 나무·산·강 등 자연의 풍경을 담고 있다.

◇‘미술 전시장’으로 변신한 로비=종로구 신문로 1가에 있는 흥국생명 건물. 건물 앞에 서 있는 ‘망치질하는 사람’이라는 22m의 대형 구조물이 특징적인 건물이다. 이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작품이다.

현재 이 건물 로비는 갤러리로 변해 있다. 백남준·강익중·이불·최우람·줄리안 오피·마리코 모리 등 유명 국내외 작가 10명의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흥국금융그룹은 새 CI를 선포하면서 그 일환으로 건물 로비에서 미술전을 열게 됐다. 흥국생명 최새라 브랜드팀 과장은 “회사 내부 행사에 막대한 비용을 쓰기보다 시민들에게 무료로 좋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있는 작품 소장자 다섯 명이 무료로 전시 작품을 빌려줘 비용도 크게 들지 않았다. 최 과장은 “전시된 작품 하나가 수십억원대에 이를 정도로 좋은 미술적 가치가 높다”며 “시민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놀러 올 정도로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7월 31일까지 열린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김상선·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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