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급사태 방치만 할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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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000명 한의대생들이 내일 모레면 줄이어 유급사태에 들어간다.약학대학에 한약학과 설치를 허가한 정부방침에 대한 한의대학생들의 「유급투쟁」이 무더기 유급사태로까지 확대된 것이다.이사태를 보면서 이해 당사자간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어째서 사태가 여기에 이르도록 방치됐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의대생 유급투쟁의 뿌리는 물론 한-약분쟁이다.오래고도 질긴이 분쟁이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못한채 봉합되니 분쟁은 어떤 형태로든 터지게 마련이다.한-약분쟁 해법은 근본적으로 시비의 판단이라기보다 이해조정 능력에 있다고 본다.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전에 시비와 분쟁을 해소하고 해결하는 접근 자세와방법,그리고 사회적 장치가 중요하다.그러나 우리 사회에 이런 조정 능력이 없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민주화.산업화.지방화시대에서 지역별.업종별.계층별 이해와 갈등은 어디서나 존재한다.이런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고 풀어가는 타협적 자세와 제도적 장치가 잘 작동하는게 선진사회다.그러나 우리에겐 이런 지혜와 장치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
4,0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학생신분으로서 자살과 다름없는유급사태에 이르렀건만 이를 중재하고 푸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채 모두가 나몰라라다.
이해 당사자들이 우선 이 문제를 풀 성의와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조정력을 발휘할 정부.국회.대학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분쟁조정 역할을 맡아야 할 기관과 책임자가 나서 먼저 대량 유급사태를 막고 한-약분쟁을 종식토록 해야한다.관계장관으로 안되면 총리와 존경받는 사회 원로들도 발벗고나서 조정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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