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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히 돌파하라 보이지 않는 수많은 ‘태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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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26면

허정무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이 출전 선수를 정할 때 누구의 이름을 가장 먼저 리스트에 써넣을까. 박지성(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다. 감독이 누구라도 십중팔구 그렇게 할 것이다. 지금으로 봐서는 한국 선수 가운데 박지성의 경쟁자는 없다.

남아공 월드컵 향해 6월 내내 달릴 박지성

누구보다 성실한 사나이 박지성. 그러나 지금 그는 지쳐 있을 것이다.

박지성은 적어도 6월에는 ‘FC 코리아’ 선수다.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세 번째 경기를 시작으로 이달 내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뛴다. 7일 요르단, 14일 투르크메니스탄(이상 원정), 22일 북한(서울)과 경기한다. 한국은 4개국 가운데 2위 이내에 들면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에 진출한다.

모두 한 수 아래로 평가되는 팀이지만 승리를 낙관하긴 어렵다. 한국은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도 레바논·몰디브와 잇따라 비기는 등 허덕이다가 간신히 최종 예선에 진출했다. 그렇기에 박지성의 책임은 막중하다. 허 감독의 기대, 팬들의 신뢰는 박지성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지친 영웅, 위기의 6월?

박지성이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한국대표팀의 훈련장인 레버쿠젠의 바이아레나에서 훈련하고 있다.

2008년 6월은 박지성에게 위기의 계절이 될지 모른다. 수많은 덫이 그를 둘러싸고 있으므로. 축구에만 전념할 수 없는 환경과 피곤한 몸,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석권하며 느꼈을지 모르는 승리에 대한 포만감은 박지성의 경기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박지성은 지난달 24일 영국 맨체스터로부터 14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 이튿날인 25일 경기도 전곡항에서 열린 경기국제보트쇼 홍보대사 위촉식, 대표 소집을 하루 앞둔 27일 나이키가 주최하는 프로모션 행사에 참석했다. 경기도 수원시에는 ‘지성로’와 ‘지성공원’이 있다. 나이키는 연간 10억원가량을 박지성에게 지원한다. 두 자리 모두 박지성이 거절할 수 없는 자리였다.

1년 전 이맘때 박지성은 무릎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지난해 4월 미국에서 무릎을 수술했고 12월 말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수술과 재활은 성공적이었지만 박지성의 무릎이 어린 송아지의 연골처럼 깨끗해진 것은 아니다. 수술로 사용 기한을 늘렸고, 눈물겨운 노력으로 주변 근육을 강화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박지성은 두 차례 무릎을 수술했고, 또 다치면 수술하기가 어렵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해 프랑스의 리더 지네딘 지단은 챔피언스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우승으로 이끌고 프랑스 대표팀에 부랴부랴 합류했다. 지단은 체력·정신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경기를 하다 부상을 얻었다. 올해 박지성의 일정은 2002년의 지단과 너무도 유사하다.

지금 박지성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톱스타다. 박지성이 지금껏 이룬 것에 비하면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이라는 타이틀은 초라해 보인다. 굴지의 스타로 떠오른 박지성에게 ‘몸을 아끼지 마라’ ‘열정을 불살라라’고 요구하기에는 ‘판’이 작은 것이다.

이제는 전설을 쓸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FC 코리아의 간판이다. 그가 있어 한국은 강한 팀으로 군림한다.

박지성은 경기의 템포를 한 단계 빠르게 끌어올리고, 편안하게 패스를 연결해주고, 빈자리로 파고들어 활로를 개척한다. 늘 꾸준하고, 어떤 자리든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동료 선수의 컨디션과 상대에 따라 박지성의 포지션은 바뀔 것이다. 허정무 감독에게는 다양한 전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마스터 키’와 같은 존재다.

스물일곱이라는 나이는 축구 선수에게 전환점이 된다. 체력과 스피드가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대신 경험과 안목이 늘어간다. 성실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선수들에게는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는 시기. 맨유에서 무려 열 번이나 프리미어리그를 제패한 라이언 긱스(35)는 여전히 챔피언이 되려는 열망으로 가득하다. 독일 전차군단의 리더 미하엘 발라크(32)는 2008 유럽선수권 우승을 꿈꾸고 있다.

차범근은 27세이던 1980년과 35세이던 88년 두 차례에 걸쳐 UEFA컵을 안았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부진해 16강 탈락의 멍에를 지고, 98년 프랑스 월드컵에는 부상 때문에 나가 보지도 못한 황선홍은 34세이던 2002년 모든 한을 풀어버릴 수 있었다.

박지성은 2002년 월드컵 4강,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연패,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이미 너무도 많은 것을 이뤘다. 하지만 박지성의 미래는 어제보다 더 빛날 수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FC 코리아’가 다시 한번 한·일 월드컵의 영광을 재현한다면 그 중심에 박지성이 있을 것이다. 그 즈음이면 박지성이 주장 완장을 차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향한 FC 코리아의 6월 진격을 앞두고 박지성이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있다.



남아공으로 가는 길

한국이 3차 예선을 통과하면 올 하반기 아시아 최종예선에 참가한다. 모두 10개국이 출전하는 최종예선에서는 일본·호주·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 아시아의 강호를 상대하게 된다. 10개국이 2개 조로 나눠 더블리그를 하며 각 조 1, 2위 4개국은 남아공에 직행한다. 각 조 3위는 플레이오프로 승자를 가린 뒤 오세아니아 대륙의 대표(뉴질랜드가 유력)와 남아공행을 놓고 마지막 승부를 벌인다. 아시아에서는 적어도 4개국, 많게는 5개국까지 월드컵에 나가는 셈이다. 시드 배정 때문에 최종 예선에서 일본과는 같은 조에 포함될 가능성이 작다. 하지만 이란·사우디 중 중동의 강호 중 한 나라와는 반드시 만날 것이다. 여기에 호주까지 가세한다면 힘겨운 승부를 피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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