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저항해야만 ‘강간’ 인정하는 판례부터 바꿔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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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11면

저는 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입니다. 18년 전 상담소 설립 때부터 성폭력 문제를 다뤄왔는데요. 기자가 찾아와서 제 생각을 묻네요. “법원의 성폭력 사건 처리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고요.

이미경 성폭력상담소장이 보는 ‘성폭력’ 판결

제가 법원 재판에서 가장 큰 문제로 여기는 것은 대법원 판례입니다. ‘강간이 성립하려면 가해자가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목숨 걸고 저항한 여성만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보호받을 가치 있는 정조’와 ‘가치 없는 정조’로 나누는 1950년대식 통념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거죠.

그런 통념에서 “왜 그 남자와 술 마셨느냐” “왜 여관에 따라갔느냐” “당신이 몇 살인데 그것도 몰랐느냐”는 식의 레퍼토리가 재생산됩니다. “벗기기 힘든 청바지를 여성이 입고 있었다면 성폭행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서울고법 판결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싫었다면 왜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았느냐’는 시각이 드리워져 있지요. 이 판례만 바뀌어도 사회 인식이 변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재판 과정은 어떻냐고요? 성폭행이 우발적으로 생긴 사건이라는 데 재판의 초점이 맞춰지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사건 당시 가해 남성이 술에 얼마나 취했는지가 왜 중요한지 이해가 안 돼요. 계획적으로 몇 시간씩 피해자를 뒤따라간 것을 ‘우발적’이라고 말하긴 어렵지 않나요? 술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 않나요?

 형량은 ‘몇 년 이상은 돼야 한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피해자가 성폭행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가해자가 교도소 문을 나오게 되면 피해자로선 공포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무력감과 좌절감·수치심에 속 끓이고, 주변의 시선에 괴로워하는데··· 그런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간이 몇 달, 몇 년이어야 할지는 판사들의 판단에 맡기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게 판사들의 잘못이라고 보진 않아요. 판사도 사회 전체의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지요. 비커에 따로 담아둔 물이 아니잖아요. 다만 판사 분들께 부탁 드릴 게 있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에도 서보려는 노력을 해보시길. 피해자가 법정에서 “너무 무서웠다”는 말밖에 못하고 있을 때, 상황 설명을 주저하고 있을 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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