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고 신기한 물건 많은데 손님은 왜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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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에서 벨트·등산용품 등을 파는 고광선씨가 손확성기를 들고 손님을 끌고 있다. [사진=최선욱 기자]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따라 신설동으로 옮겨 지난달 26일 문을 연 서울풍물시장이 한 달을 넘겼다. 하지만 이곳에 입주한 상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34년 전 청계천에서 장사를 시작해 동대문운동장을 거쳐 신설동까지 옮겨 온 상인 고광선(50)씨에게서 그 이유를 들어 봤다.

“오늘은 3000원짜리 벨트 하나 팔았어요. 그런데 점심은 4000원짜리 먹어서 적자예요, 적자.”

27일 오후 만난 서울풍물시장 상인 고광선씨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동대문운동장 철거로 서울풍물시장이 동대문구 신설동으로 옮겨 문을 연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기대만큼 손님이 찾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10시까지 문을 열어 하루 5만원어치 팔기가 쉽지 않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장사할 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그때 수입도 안 나온다는 것이다.

서울풍물시장은 지하철 1, 2호선 신설동역에서 약 200m 거리에 있지만 두 블록이나 떨어져 있어 처음 가는 사람에겐 그리 찾기 쉽지 않다. 전철역 입구에 안내판이 있지만, 몇 번을 꺾어 들어가도록 그려져 있는 약도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약도라도 쉽게 그려져 있으면 좀 더 사람들이 많이 올 거예요. 지금 역에 있는 건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이곳 상인회의 홍보 담당인 고씨는 서울시가 셔틀버스 운행과 눈에 잘 띄는 간판 설치를 지원해 준다면 사정이 훨씬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동대문 풍물시장 시절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원하고 있다. 오후 4시가 지나자 고씨는 애가 타는지 ‘손님은 왕이다!’고 쓰인 파란 조끼를 입은 채 손확성기를 집어 들었다. 2층에 입점해 있는 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손확성기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가 외친다.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이 많은 서울풍물시장입니다. 많이 사 가시고 소문 좀 내 주세요!”

충남 금산군이 고향인 고씨는 16세 되던 해인 1974년 서울에 올라왔다. 주로 신문을 팔며 돈을 모으다 80년대 들어 청계천에 자리를 잡고 벨트 장사를 시작했다. 한때 고씨도 나름대로 재미를 봤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88년엔 하루 20만원 이상 매출을 올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품목을 늘려 가기 시작한 고씨는 벨트뿐 아니라 자전거 헬멧, 등산용 지팡이, 망원경 등 50여 가지 물건을 파는 ‘사장님’이 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사정은 다시 빠듯해졌다.

그나마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던 동대문운동장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사업 때문에 헐리는 바람에 지난달 이곳으로 옮긴 뒤에는 매출이 더 떨어졌다. 청계천에서 동대문운동장 그리고 다시 신설동으로. 시장이 바뀔 때마다 기껏 닦아 놓은 터를 놓쳤다는 불만도 내비쳤다.

“그래도 높으신 분들이 나라 잘 만들려고 하는 거니깐 이해합니다. 시에서도 우리들 장사 잘되게 도와준다고 했으니 믿어야죠.”

이곳에서 아쉬운 점이 뭔지 묻자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넓게 편 낡은 보자기가 유리 천장에 붙어 있다. 햇빛에 물건 색이 바래지 않게 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이번에는 바닥을 가리켰다. 타일을 입히지 않은 콘크리트 바닥 그대로 다.

“아무리 시장이라지만 분위기가 이런 데 물건 사러 올 기분이 나겠어요? 동대문에만 디자인한다 그러지 말고 여기도 좀 신경 써 주면 좋을 텐데.” 그러면서도 고씨는 “모든 상인이 함께 노력하고 있어 좋아질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고씨는 다시 손확성기를 들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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