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현장 관찰] 4. 지역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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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이 교수 <경상대 정치행정학부>

17대 총선을 보름 남겨둔 현재까지도 각 정당들은 탄핵정국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핵반대 여론에 힘입어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역대 어느 정당도 오르지 못했던 50% 선을 넘나들고 있다.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카드'를 내세워 반전을 모색하고 있으나 힘이 달리는 양상이다. 탄핵의 직격탄을 맞은 민주당은 추미애 선대위원장 체제를 겨우 출범시켰으나 텃밭인 호남에서조차 맥을 못 추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관찰한 경남 진주지역은 탄핵찬반 자체가 선거판을 끌어가는 이슈가 아니었다. 전통적인 지역주의 분위기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인물.정책이 중시되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우선 진주참여연대의 최근 유권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안 가결이 잘못됐다는 응답이 60%지만, 잘됐다는 응답도 31%로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정당지지도에서는 열린우리당이 35.7%, 한나라당이 31.7%를 얻었다. 진주시내 차없는 거리에서 열렸던 촛불시위에는 200여명이 참여했으나 열기는 떨어졌다.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진주 갑 지역은 한나라당(최구식)과 열린우리당(이기동) 후보 간의 오차범위 내 접전으로, 진주 을 지역에서는 열린우리당 김헌규 후보와 한나라당 김재경 후보, 무소속 하순봉 의원이 혼전상태다.

이처럼 진주는 더 이상 한나라당의 아성이 아니다. 그렇다고 열린우리당에 대한 표쏠림 현상도 없다. 이런 정서로 인해 후보들의 선거전략도 소속 정당이나 탄핵문제보다는 인물론과 공약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한나라당 김재경 후보는 "과거에는 '기호1번 한나라당입니다'라고 외치면 됐지만 지금은 가급적 한나라당을 언급하지 않고 후보자의 인물홍보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열린우리당 김헌규 후보 역시 전국적.논쟁적 이슈보다 개인의 자질을 알리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그는 "탄핵에 대해선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모두 잘못이라는 양비론이 많기 때문에 유권자들과 접촉할 때 이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하순봉 의원은 "지역에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의 김미영 후보는 노동정책.자유무역협정(FTA)문제.이라크 파병 등에서 열린우리당과의 정책 차별성을 강조한다.

지역대표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가 탄핵심판과 대통령 재신임을 묻는 선거로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진주의 상황을 보면 이번 탄핵정국이 오히려 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돕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고질적인 '묻지마 지역투표'성향은 없어졌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렇다고 감성투표 가능성이 우려되는 '탄핵반대=열린우리당 후보 지지'의 등식도 성립하는 것 같지 않았다.

탄핵정국의 혼돈 속에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경향을 발견한 것은 큰 소득이었다.

윤성이 교수 <경상대 정치행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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