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바겐세일’의 계절 … 10% 싼 아파트도 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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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매물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나왔지만 최근 들어 크게 늘었고 가격 할인폭도 커졌다. 새 정부에 기대했던 부동산 규제완화가 요원해지면서 매도시기를 늦춰왔던 집주인들이 ‘실망 매물’을 한꺼번에 내놓고 있어서다. 실수요자 입장에선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자금여력이 있는 주택 수요자들은 평소 관심을 가졌던 아파트를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그러나 값이 싸다고 덜컥 매수 계약서를 쓰면 안 된다. 하자 있는 아파트는 아닌지, 급매물이 소화되면 곧 반등할 만큼 미래가치가 괜찮은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가격 추락하는 급매물=직장인 한모(43)씨는 최근 급매물로 나온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단지 115㎡ 아파트를 9억7000만원에 매입했다. 시세보다 2억원 가량 싼 가격이다. 그 집을 담보로 6억원 가량을 대출받았던 이전 집주인이 대출 이자 부담을 견디다 못해 급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한씨는 “지난해 초 목동 신시가지 내 다른 단지 89㎡를 7억원에 팔고 그동안 펀드에 투자했었는데 요즘 펀드 수익률도 시원치 않고 이보다 더 싼 가격에 집을 살 기회도 흔치 않을 것 같아 펀드를 해약해 집을 샀다”고 말했다.

한씨처럼 요즘 이런 급매물을 사들이는 주택수요자들이 제법 된다. 아파트값이 추가로 떨어진다 해도 급매물 가격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수요자들이 급매물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 A공인 관계자는 “성복동에 분양되는 아파트를 기다리다 이보다 훨씬 싼 기존 주택 급매물을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성복동에서 분양된 아파트의 분양가는 3.3㎡당 1500만원을 웃돌지만 성복동 일대 기존 아파트 급매물은 3.3㎡당 1100만원대다. 성복동 LG빌리지 6차 207㎡의 급매물 가격이 7억3000만원이고 신봉동 LG빌리지 5차 211㎡는 7억원대 초반에 급매물을 살 수 있다. 인근 상형동 급매물은 3.3㎡ 당 900만원대로까지 추락했다. 상현근린공원 조망권을 누릴 수 있는 상현동 롯데아파트 204㎡가 5억7000만원에 나와있다. 3.3㎡당 920만원 선인데 1년 6개월 전까지 만해도 8억원을 호가하던 집이다.

분당 서현동 시범단지 및 정자동 주상복합촌 등 분당 내에서도 인기 지역으로 꼽히던 곳에서도 급매물이 계속 나온다.

지난 4·9총선 직전까지 15억원대를 유지하던 분당 파크뷰 158㎡가 14억원에 급매물로 나와있다. 시범단지 삼성한신아파트 161㎡ 로얄층도 3.3㎡당 2000만원선인 10억원에 살 수 있다. 이 역시 올 초 만해도 11억원은 웃돌았던 집이다. 서울 강남권 3개구와 강동구에서도 시세보다 10% 이상 싼 급매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지금 사도 될까=일선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대체로 지금이 급매물 매입 적기라고 입을 모은다. 규제 완화 기대감이 희석된 데 따른 실망매물이 일시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매수세는 더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어서 급하게 집을 팔아야 하는 집주인들이 몸이 달아 집값을 경쟁적으로 낮추고 있다. 흥정만 잘하면 급매물 가격에서 추가로 더 깎아 집을 살 여지도 충분하다.

강남구 개포동 미래공인 정준수 사장은 “개포 주공 1단지 49㎡의 경우 한 개 급매물이 매주 가격을 낮춰 두 달전 10억3000만원에서 최근 9억4000만원까지 떨어졌다”며 “급매물이 단지별·면적별로 1~2개에 불과해 급매물이 소화되면 집값이 다시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천구 목동 매일공인 김흥주 사장은 “정말 급한 사정 때문에 주변 시세보다 훨씬 싸게 나오는 급매물은 수요자들에게 권한다”고 말했다.

대단지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는 곳에서는 중개업자들이 급매물을 더욱 추천한다. 3226가구의 롯데캐슬퍼스트 단지 입주가 10월로 다가온 서울 강동구 암사동 일대와 1만8000여가구에 달하는 잠실1·2단지, 잠실 시영 입주를 앞두고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가 그렇다. 과천 3단지 재건축 입주를 앞두고 있는 과천 일대도 마찬가지다. 과천시 별양동 이화공인 오순정 사장은 “예를 들어 1가구 2주택자가 돼 3억원의 세금을 내느니 1가구 1주택인 상태에서 집값을 2억원 싸게 처분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집주인들이 요즘 급매물을 내놓고 있다”며 “이런 급매물은 새 아파트가 준공되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실수요자들은 서두르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의할 점도 있다. 요즘 나오는 급매물은 대부분 6억원이 넘는 집들이다. 6억원이 넘는 주택은 DTI(총부채상황비율) 대출 규제가 적용돼 대기 매수세의 돈줄이 마른 상태다.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 한 매수세가 선뜻 나서기 어려워 급매물 가격이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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