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코노미>물가 지수의 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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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플레이션은 곧 물가상승으로 인식된다.정확히 말해 돈의 가치,즉 구매력이 줄어드는 정도를 말한다.고대 로마제국의 은화(銀貨)데나리우스는 처음엔 청동이나 구리로 만들어졌다.물가가 올라돈의 가치가 떨어지자 역대 황제들은 은을 섞어 가치를 유지하려애썼다.은의 비율을 높여나가다 결국 은화로 됐지만 인플레는 계속됐다.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원인을 「상인들의 탐욕」탓으로 돌리고 가격상한을 어기는 사람들은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까지 내렸다.그러나 로마병정들의 칼자루도 ,칭기스칸의 말발굽도 인플레는 다스리지 못했다.그러나 이를 정확히 측정하는 일부터가 쉽지않다. 가장 보편적인 척도가 소비자물가지수(CPI)다.CPI는1차대전중 미국의 노동통계국이 임금조정에 연동(連動)시킬 목적으로 만들었다.그러나 그 신빙성을 둘러싼 논란은 그칠 날이 없다.CPI가 높아지면 임금인상폭도 높아진다.임금인상폭 을 높이기 위해 미국에선 CPI의 상승폭이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되도록 높게 잡으려는 「상향편견(upward bias)」이다.CPI가 너무 오른다고 생각한 닉슨대통령은 70년 노동통계국 조사책임자들의 「성분」을 조사토록 한 적도 있 다.반대로 정부당국이 민심등을 고려,물가상승률을 되도록 낮추어 잡는 「하향편견(downward bias)」도 드물지않다.미국에서 CPI가 연평균 1.0%포인트 정도씩 과다평가돼 왔다해서 논란이 한창이다. 이 상향편견을 제거하면 복지연금지출감소등으로 연방정부적자폭은 5년사이 1,500억달러 줄어든다는 계산이다.CPI는 일상생활의 주요 지출항목들이 조사대상이다.대상항목과 가중치는 미국의 경우 10년마다 조정한다.
CPI는 이들 항목의 가격변동지수에 불과하다.이를 생계비지수로 보는 데서 오해가 빚어진다.CPI는 구매나 소비패턴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는다.커피값이 비싸지면 홍차와 녹차의 소비를 늘릴 수도 있고 같은 품목이라도 값이 싼 브랜드로 옮아갈 수 있다. 이 「대체효과」들은 감안되지 않는다.조사대상이 되는 대표규격의 값을 묶어둔 채 다른 규격의 값만 슬쩍 올릴 수도 있다.값은 그대로인 채 품질이나 서비스가 나빠지는 경우,반대로 기술혁신으로 품질이 좋아지는 경우등 생활의 질적 변화도 반영을 못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잦은 업그레이드(upgrade)가상징하듯 고가(高價)신제품에 주도된 소비패턴의 점프는 CPI를더욱 무력화한다.제조업등의 효율은 높아지는 반면 의료비나 교육교습 자문등 「사람의 손」에 좌우되는 서비스는 생산 성은 그대로인 채 값만 갈수록 치솟는다.경제고도화에 따른 「바멀의 병(病)」이다.
「생활비가 턱없이 많이 든다」「돈가치가 너무 없다」는 하소들은 물가지수와 관계가 먼 쓰임새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다.CPI만이 아니고 경제통계와 그 예측들이 잇따라 수모를 당하는 바야흐로 통계수난(受難)의 시대다.
〈본사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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