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짧은 등판 긴 여운 … 마무리 투수들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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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면1=롯데-우리 경기가 열린 16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 마무리 임경완은 6-5로 앞선 9회 마운드에 올랐다. 등판하자마자 브룸바와 강병식을 삼진과 3루수 플라이로 낚아냈다. 승리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1개. 그러나 임경완은 후속 타자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동점을 내주더니 김동수에게 2타점 역전 적시타를 맞았다.

#장면2=한화와 두산이 맞붙은 20일 잠실 경기. 김경문 두산 감독은 2-0으로 앞선 9회1사1루에서 마무리 정재훈을 올렸다. 그러나 정재훈은 나오자마자 사사구 2개와 안타 3개를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결국 2-5로 두산의 역전패.

마무리 투수 수난 시대다. 지난달 25일엔 아시아 최다 세이브 기록(47세이브·2006년) 보유자인 오승환(삼성)마저 롯데 조성환에게 끝내기 2루타를 맞고 무너졌다. 팀 승리를 지켜야 할 ‘특급 소방수’들이 불을 지르는 ‘1급 방화범’이 됐다.

◇9회와 마무리 투수=야구에서 9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정규 이닝의 마지막, 그런데 1점 차 승부라면 피가 바싹바싹 마른다. 삐끗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마무리 투수가 지게 된다.

오승환은 “중간 계투를 해봐서 아는데 7, 8회와 달리 9회 마운드에 오르는 발걸음은 무겁기 짝이 없다”며 “중간 계투는 ‘내가 실패해도 뒤에 나보다 잘 던지는 투수가 있다’는 생각에 위안이 된다. 그러나 마무리 뒤에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중압감이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실토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또 다른 마무리 투수는 “울렁증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그는 “1~2점 앞선 상태에서 경기 중반이 되면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한다. 불펜에서 몸을 풀 때 ‘제발 우리 팀이 점수를 더 뽑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털어놨다.

◇역전패, 그 이후=역전패를 당하면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KIA 한기주는 “(역전을 허용하면) 마운드에선 담담하게 내려오지만 사실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고 말했다. 한기주는 “새벽 세 시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LG 우규민은 “다음날 동료들과 눈을 마주치기가 어렵다. 선후배들은 기운을 내라고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승환은 “역전패한 다음날에는 일찍 야구장에 나간다. 다시 마운드에 오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기주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면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 등판에서 내 능력을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고 했다.

정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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