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17번 만에 불법시위로 변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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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벌이던 시민들이 25일 서울 숭례문 앞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뉴스분석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가 17번 만에 평화적 문화제에서 시위대와 공권력의 ‘정면 충돌’ 양태로 돌변했다. 이틀째 시위대의 도심 도로 불법 점거가 반복됐다. 경찰은 강제연행으로 맞섰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 협상에 반발한 촛불집회는 이달 2일 처음 열렸다. 매번 수천 명, 최대 2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특히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도 대거 참여했다.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행사는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청계광장·여의도·서울광장을 옮겨가며 열린 촛불집회는 모두 경찰에 신고되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은 야간에 열리는 집회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며 불법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문화제 형식의 평화 집회’라며 맞섰다. 실제로 주최 측과 참가자 대다수는 ‘정권 퇴진’ 같은 정치적 구호를 자제했다. 한때 피켓 사용 등 불법 행위를 스스로 규제하기도 했다.

검찰과 경찰도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자 “뚜렷한 위법 사실이 없다면 촛불집회 자체를 막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24, 25일 연이은 불법 시위는 정부와 검·경이 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오후 경찰·검찰·국정원·노동부는 긴급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에 참가했던 국민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장시간 도로를 점거하는 등 시위대의 도를 넘는 불법 행위가 계속됐다.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과 경찰은 불법 시위 주도자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도 검토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불법에 대한 엄정한 법 적용을 강조해 왔다. 그런 만큼 이번 시위대에 대한 대응은 정부의 향후 법 집행 의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경찰은 시위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구호가 전면에 나타난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촛불집회가 평화적 문화제에서 불법 야간 정치집회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촛불집회의 성격이 바뀐 배경에는 계속된 촛불집회에도 불구, “사실상 얻어낸 것이 없다”는 불만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25일 서울역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던 김모(여·32)씨는 “대통령의 담화를 들었지만 계속된 거짓말에 실망했다. 청계광장에서 ‘앉아서’ 주장해 봐야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데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촛불시위의 주역이 중·고생, 가족 단위 시민에서 시민·학생단체로 바뀐 것도 영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초 촛불집회는 일부 인터넷 단체가 주도하고 비조직화된 중·고생과 시민들이 주도했다. 하지만 이달 중순부터 진보연대 등 1700개 사회단체가 모인 ‘국민대책회의’가 주관하고 있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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