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北송금' 4명 유죄 확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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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특검 수사가 시작된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1년 만에 사실상 마무리됐다.

대법원 2부(주심 金龍潭 대법관)는 이 사건으로 기소된 전 국가정보원장 임동원(林東源)씨 등 4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유죄를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유죄가 확정된 사람은 林씨를 비롯해 이근영(李瑾榮) 전 산업은행 총재.박상배(朴相培) 전 산은 부총재.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 등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던 이기호(李起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던 최규백(崔奎伯)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항소를 취하했거나 포기했다. 법원은 지난해 8월 사망한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에 대해서는 공소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현대에서 불법 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추가 기소돼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지원(朴智元)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제외한 이번 사건 관련자 6명 모두가 유죄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과정에서 피고인들이 재경부.통일부 몰래 북한 측에 4억5000만달러를 보낸 행위 자체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은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닌 통치행위여서 사법부의 심사대상이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북한에 돈을 보낸 것은 법원이 판단해야 할 위법한 행위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법원은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기본권을 보장하고 법치주의 이념을 실현해야 할 책무를 포기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긴급한 상황에서 적법한 송금절차를 지킬 수 없었기 때문에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대해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북한에 현금을 보내야 하는 것이 전제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국민적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에 비밀리에 송금해 국론이 분열되고 현재까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다소 진통이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친 뒤 실정법 범위 내에서 북한에 돈을 보내고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정치적 선택의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통치행위에 있어 절차적 적법성과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 관련자들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사면.복권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추게 됐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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