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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국’ 오명 벗고 국제사회 편입 기회 열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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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10면

1977년 북한에 납치된 일본 여성 요코타 메구미의 딸 김혜경양이 2002년 10월 평양의 한 호텔에서 일본 언론들과 인터뷰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북·일 간 미해결 상태인 일본인 납치 문제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과정에서 막판 변수가 되고 있다. 평양 AP·마이니치=연합뉴스

“길이 확 뚫리는 것은 아니다”

北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 눈앞에

미국이 적성국 교역법을 적용 중인 나라는 현재 쿠바와 북한 둘뿐이다. 한국전에 참여한 중국에도 이 법을 적용해 제재를 했지만 국교 수립 이후 곧 풀었다. 적용 종료 절차는 쉽다. 매년 9월 실시하는 적성국 교역법 적용 갱신 시에 북한을 누락하면 자동 종료된다. 미국은 적성국 교역법을 근거로 북한에 대해 교역과 투자, 금융거래를 포괄적으로 규제했다. 대표적인 게 수출통제법과 해외자산통제 규정. 북한산 상품을 수입할 경우 재무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북한 국적의 선박에 대한 소유나 임대·운항·보험 등을 아예 금지했다. 미국 금융기관을 경유한 금융거래도 막았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린 뒤 더해진 제재는 수십 가지다. 무기수출통제법과 수출통제법에 따라 미 군수품의 수출 및 재수출 금지는 물론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품목의 수출도 제한됐다. 고성능 컴퓨터 등도 북한 반입이 금지됐다. 미국은 자국인이 북한에서 얻은 소득에 대해 이중과세 면세 혜택을 주지 않았다. 북한은 대외원조법 등에 따라 공적개발자금(ODA) 같은 대외원조도,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미국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국 집행이사에게 그 기구가 테러지원국에 대해 차관을 주거나 자원·자금을 사용할 때 반드시 반대하도록 의무를 부여했다. 국제금융기관법에 따른 것이다.

적성국 교역법의 적용이 종료되고,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된다는 것은 이런 모든 제재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의 지원 대상이 돼 정치·경제적으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금융기관과도, 그동안 중단됐던 해외 금융기관과의 거래도 재개되고 국제사회의 대북 원조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세계은행이나 IMF 등의 경우 미국이 지원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막상 대북 개발 지원 결정은 나머지 이사국들에 달려 있다. 최근 국제금융기구나 원조국들은 지원을 받는 나라에 정책 협의나 투명한 통계 작성, 개방 경제를 위한 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 이를 충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 큰 문제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미국 국내법의 규제들이다. 테러지원국에 적용돼 온 수출보증이나 대외원조 금지, 해외민간투자공사 지원 금지법은 공산주의 국가나 인권 탄압 국가에도 적용하고 있다.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돼도 제재는 유효하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길이 확 뚫리지는 않는다”며 “실제 효과가 나려면 미국 법 내에 중첩된 규제를 모두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핵실험을 한 국가에 미국의 예산 지원을 금지한 ‘글렌 수정법’도 있고,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 1718호에서 포괄하는 대북 제재도 있다. 글렌 수정법의 경우 미 의회가 큰 틀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면제 권한을 부여하도록 했지만 의회는 ‘조건’을 계속 붙여 놓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 해제 문턱에서 좌절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도 북측에 두 제재가 해결돼도 당장의 실익이 없다는 점을 설명한 것으로 안다”며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자신과의 대화를 소개했다. 그는 “김 부상은 ‘우리도 이것으로 다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 공화국의 영상(이미지)이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테러지원국, 불량국가로 분류되는 것을 수치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대미 관계를 풀어 나가는 데 있어 정치적 상징성도 크다는 분석이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남북협력실장은 “북한은 핵 개발 카드를 미국과의 적대 관계 해소, 관계 정상화 차원에서 설명해 왔다”며 “미 정부가 씌운 법적·제도적 제재의 모자를 벗어 내는 것은 명분상 북측에는 큰 성과”라고 말했다.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를 핵심 이슈로 제기한 것은 북·미 정상회담까지 추진되던 2000년이다. 북한은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을 준비하면서 방문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테러지원국 리스트 해제를 요구했다. 협의 결과 양국은 ‘테러를 반대하는 국제적 노력을 지지한다’는 공동성명을 도출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클린턴의 방북 무산으로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논의도 중단됐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3년 8월 베이징(北京) 6자회담에서 자신들의 주요 요구사항으로 테러지원국 해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2006년 10월 핵실험 이후 북·미 직접 대화가 본격화되자 이를 최대 어젠다로 부각시켰고 미국이 2007년 9월 베를린 회동에서 테러지원국 해제를 이면 약속한 이후 북핵 시설의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에 속도감을 냈다. 정부 당국자는 “두 가지 제재 해제가 비록 한계는 있지만 북한으로선 변화를 위한 중요한 출발선”이라며 “향후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북·미가 상호 신뢰를 쌓아 가면 다른 법령에 걸려 있는 중첩된 대북 제재들을 철거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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