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수기자의환경이야기] ‘21세기 노아의 방주’가 깨우쳐 주는 것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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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올 2월 북극점에서 1000여㎞ 떨어진 노르웨이 북쪽 스발바르 섬의 눈 덮인 산속에 터널 모양의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된 출입문, 120m나 되는 캄캄한 통로는 핵전쟁을 다루는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모양입니다. 건물은 ‘글로벌 농작물 다양성 트러스트(GCDT)’라는 단체가 노르웨이 정부와 빌 게이츠 재단, 유엔재단의 후원을 받아 지었습니다.

사시사철 꽁꽁 얼어붙은 외딴 곳에 들어선 이 건물은 전 세계 곡물종자 450만 점을 보관하게 됩니다.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극심한 가뭄과 홍수 같은 대재앙으로부터 인류를 먹여 살릴 ‘씨앗’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해발 130m 산 위여서 지구가 더워져 극지방 빙하가 녹아내리고 바닷물이 차올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워낙 추워 전기가 꺼져도 저장고 온도는 영하를 유지합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도 농촌진흥청이 1만3000점의 종자를 올해 안에 갖다놓을 예정입니다. 종자는 우리 정부의 허락이 있어야 개봉됩니다.

22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이었습니다. 유엔이 기념일까지 정한 것은 지구상의 생물종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을 인류가 공유하자는 뜻입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최대 5000만 종으로 추산되는 지구상의 생물 가운데 해마다 1만8000~5만5000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꾸만 늘어나는 멸종위기 동식물의 명단을 보면서 “‘노아의 방주’를 얼마나 크게 만들어야 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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