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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악의 섹스 테러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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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겉모습은 프로였다. 하지만 실상은 모텔 잡는 데 한 시간, 구석구석 샤워하는 데 한 시간, 게다가 테크닉 부족으로 삽입까지 또 한 시간이 걸리는 최악의 섹스 아마추어. 로맨틱함으로 물들어도 모자랄 그날의 추억을 짜증으로 얼룩지게 했던 내 생에 최악의 섹스 테러리스트 이야기.

editor·조선민

여성중앙 다섯 살 어린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있는 나. 복에 겨워야 할 나에게도 고민이 있으니 다름 아닌 내 어린 애인의 독특한 섹스 취향. 처음으로 둘만의 여행을 떠났는데 세상에, 그가 간호사 복장에 주사기까지 챙겨주며 “누나도 이게 좋지?”라 물으며 미소를 짓는 것이다. 아, ‘누나’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것을 참게 만드는 족쇄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미쳤냐’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도는데 ‘누나’라는 말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밤의 세계를 뒤흔드는 누나의 능숙함과 프로페셔널함을 기대하는 어린아이 앞에서 당황하는 기색을 내보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생전 처음 보는 간호사 복장에 주사기를 들고 춤출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게다가 어디서 본 건 많아가지고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더니 뒤돌아 벽을 보며 춤을 출 것까지 강요한다.

어색하게 벽을 비비며 차마 섹시함에는 미치지 못하는 몸부림을 해대고 있는데 잠시 모습을 감추었던 그가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해 등장했다. '퍽!’ 갑자기 눈앞에서 별이 보였다. 아찔해진 정신을 붙잡으니 멀쩡한 벽에 머리 박은 내 입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의욕에 불타 등에 업힌 새로운 자세로 관계를 시도하려던 그가 차마 힘 조절을 못하고 어부바를 하듯 거세게 점프해 내 머리를 벽에 충돌시킨 것.

나이 서른다섯에 간호사 복장을 입고 입술이 퉁퉁 부어오른 나와 밤의 황제를 흉내 내다 누나 잡고 잔뜩 긴장하고 있는 젖비린내 나는 남자친구. 그날 밤 나는 아린 입술을 부여잡고 조용히 얼음찜질을 하며 까맣고 긴 밤을 흘려 보냈다.

꿈에서만 만나던 이상형과 사귀기 시작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외모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완벽함을 추구하던 내 남자친구는 약속시간에 어디선가 기다리다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정각에 영화의 주인공처럼 등장했으며, 운전할 때는 노란색 신호에서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손꼽아 기다리며 상상만 하던 그와의 첫날밤. 항상 완벽한 모습만 보였던 그도 긴장했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이 오랜만의 거사에 조금 긴장한 눈치. 서로의 체온이 조금씩 올라가자 좀처럼 보이지 않던 그의 다급한 모습이 보인다. 평소대로라면 넥타이는 조심스레 풀어 화장대 위에 접어두고 양복은 구겨지지 않게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걸고 시작했을 텐데,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이마에 맺힌 땀과 함께 뒤얽혀 눈을 찌르는 것도 모르고 넥타이를 사정없이 풀어헤치더니 침대 밑으로 터프하게 던져버리는 제스처를 연출했던 것.

‘이 남자, 알고 보니 터프한 면도 있구나.’ 바로 그때, ‘악!’ 정적을 깨는 외마디 비명소리. 내 얼굴 위로 드리워진 그의 얼굴이 핏빛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내 얼굴에 맞닿아 있던 이마에는 손가락보다 더 굵은 것 같은 흉칙한 핏줄이 울퉁불퉁 튀어나오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비명소리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찬찬히 그를 내려다보니 이게 웬일? 완벽한 내 남자가 아랫도리를 붙잡고 신음소리를 내며 아픔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처절하게 양복 지퍼에 끼여 있는 그의 물건이 보였다. 흥분한 그가 허겁지겁 내린 바지 지퍼에 말 못할 그것이 엉겨버렸던 것.

때는 2004년 1월, 날씨는 영하 10℃를 넘나들며 매일같이 신기록을 경신했고 집집마다 아파트 하수도관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다 끝내 견디지 못하고 동파되어 아파트 상가에서 양동이로 밤새 물을 실어 나르던 그때. 야근에 시달려 5개월째 코빼기도 보지 못한 남자친구에게 참지 못하고 선언했다. ‘오늘 그냥 같이 모텔에서 자자. 보고 싶어. 더 이상은 못 참겠어.’ 대한민국 여성이 이 말을 뱉어내기가 어디 쉬웠겠는가. 더군다나 당시 우리는 연애 진도의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조심조심 하나 남은 벽돌 깨기의 찰나를 노리던 때.

드디어 새벽 2시, 우리는 한 달 만에 이산가족 상봉하듯 종로 한복판에서 얼싸 안으며 서로의 체온을 확인했다. 그리고 모텔을 찾아 당당하게 돌진했지만 계속해 마주하게 된 건 불 꺼진 모텔의 간판들. 불을 꺼놓은 것은 방이 다 찼다는 주인장의 신호이건만 내 남자친구는 그것도 모르는지 그 추운 새벽에 모텔만 보이면 하나도 빠짐없이 우선 들어가고 보는 것이었다.

괜히 아는 척했다가 경험 많은 여자처럼 보일까 봐 입 꼭 다물고 문 닫은 모텔 입구에 헤딩하기를 기꺼이 함께 했다. 결국 잔뜩 얼어버린 콧물을 훌쩍이며 겨우겨우 찾아낸 곳은 모퉁이에 어색하게 서 있는 비즈니스호텔. 간신히 몸을 수습하고 침대에 누웠을 땐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새벽 5시 반. 하지만 어떻게 들어온 호텔인가. 애써 분위기 잡아보겠다고 커튼이란 커튼을 다 치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서로를 탐닉했다.

그리고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가 이미 봐두었다는 듯이 냉장고에서 초콜릿색으로 포장된 콘돔 봉지를 꺼냈다. ‘콘돔이 냉장고에?’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의아했지만 비닐 포장지가 영락없는 콘돔 봉지라 더는 의심할 수 없더라. 차가운 콘돔이면 어떠랴. 색다르겠다 싶어 눈을 감고 그의 착용을 기다렸다.

좀 오래 걸린다 싶어 실눈을 뜨고 그의 행동을 지켜보니 마치 먹이를 낚는 독수리처럼 잔뜩 흥분해 콘돔 봉지를 쥐어뜯던 그는 잘 벗겨지지 않았는지 치아로 잡아 뜯어내는 중.

‘통~통~통~.’ 콘돔 봉지에서 벗어난 무언가가 포물선을 그리듯 하늘로 솟구치더니 그냥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어안이 벙벙해 바닥을 살펴보니 콘돔 봉지 안에서 튕겨져 나온 건 끈적끈적한 콘돔이 아닌 리얼 초콜릿. 뜨악, 정말 초콜릿이었던 거다.

그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튕겨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먼지에서 한 번 뒹군 초콜릿을 주워 먹어버렸다. 김빠진 우리의 기분만큼이나 보잘것없이 바람이 빠져버린 그의 왜소한 물건. 눈물 콧물 다 뽑아내며 한겨울에 모텔 찾으러 서울을 유랑하던 우리는 긴긴 밤을 사이좋게 초콜릿을 나누어 먹으며 허무하게 지새웠다.

나의 애인은 독실한 크리스천. 모태신앙으로 취업을 한 지금까지도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가며 성가대에서 절대음감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그는 누가 봐도 성실하고 올바른 대한민국 일등 신랑감. 그의 건실함이 나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의 종교가 여성은 물론 남성의 혼전 순결까지 요구한다는 것.

영화관, 미술관 그리고 레스토랑을 맴도는 데이트의 지루하고 지루함이 절정에 달해 친구와 방문하는 클럽과 나이트의 음악이 귀에 맴돌때 쯤, 뜬금없이 그가 대낮부터 비디오방에 가자고 제안했다. 호텔도 아니고 모텔도 아니고 중학교 때 드나들던 그 작고 쾨쾨한 방에 가자는 건가?’

그리고 들어선 곳은 정말 비.디.오.방. 처음에는 조금 뜨악했지만 지루한 미술관보다는 나을 거란 생각을 억지로 해가며 남자친구를 향해 마구 솟구치는 잠시의 불쾌감과 짜증을 참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시작된 영화는 스케일 크다는 <황후花>.

‘이런 스펙터클한 영상의 영화를 쥐구멍만 한 비디오방에서 보겠다고 고르다니 너 참 대단도 하다.’ 다시 한 번 솟구치는 분노를 꾹 참으며 남자친구에게 썩은 미소를 한번 지어주고 영화에 집중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남자친구가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덥석 안더니 들썩이며 동요하기 시작한다.

‘역시 너도 남자였구나.’ 서른두 살 먹도록 욕정을 참아온 그가 터트린 안타까운 몸부림에 흔쾌히 장단 맞춰주며 함께 리듬을 타주었다. 그리고 서서히 내려가는 나의 치마와 그의 바지. ‘그럼~ 자고로 30대 남녀의 데이트가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생각에 뿌듯해하고 있는데 허벅지 쪽에서 무언가 기이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나 왠지 그의 물건이 있을 장소가 아닌 듯싶어 아래를 보니 한껏 흥분한 그의 그곳이 갈피를 못 잡고 나의 허벅지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거기가 아닌데’ 하는 생각에 정신은 멍해졌지만, 나의 멍해짐은 아랑곳 않고 흥분한 그는 제대로 된 입구를 찾을 생각도 차마 못한 채 살짝 비어 있는 허벅지 사이 그 공간을 표적 삼아 그간 참아온 욕정을 분사한다.

맙소사, 시작도 못해보고 거사가 끝나버렸다. 움직임도, 따뜻함도 느꼈지만 무언가 이건 아니라고 느낄 때쯤 머릿속을 파고든 한 문장. ‘남자의 정조.’ 그렇다, 그는 남자의 정조를 지켰다. 지켜주지 않아도 된다는 내 말이 입 밖으로 채 나오기도 전에 알아서 혼자 볼일을 끝낸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맥없이 그를 바라보니 서른두 살의 그가 부끄러운 듯 바지를 훔치고 있다. 숱이 부족해 평소에도 조금 넓어 보이는 그의 이마 선이 그날따라 어찌나 씁쓸해 보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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