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블로그] 휘발유 세금징수 비용 떠넘긴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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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 3만원어치를 넣었습니다. 그 주유소의 휘발유 값은 1리터에 1699원으로 차에 들어간 휘발유 양은 17.66리터입니다. 비용은 신용카드로 결제했습니다. 그날은 '3-6-9데이'라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면 1리터에 80원 가량의 적립금(신용카드사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음)이 발생합니다. 최근 기름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지만 기자는 적지 않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한국석유공사가 1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5월 첫주(4일-10일)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한 휘발유 값은 1리터에 1655.83원이었습니다. 위의 주유소가 휘발유를 정유사로부터 이 가격에 받아 1699원에 팔았다면 1리터에 43.17원의 마진이 생깁습니다.

이 주유소는 과연 남는 장사를 했을까요. 물건 파는 사람이 "밑지고 판다"고 하는 말은 정말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라고 하죠. 하지만 위 주유소는 밑지고 장사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위 주유소는 기자가 휘발유 3만원어치를 넣고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바람에 450원의 카드수수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주유소가 부담해야 하는 카드수수료율은 다른 업종에 비해 낮지만 1.5%입니다. 3만원을 결제해주었다면 450원을 카드회사에 내야 하죠.

휘발유 1리터로 계산하면 25.48원이 주유소 비용으로 나가는 셈입니다.

여기에 주유소 마진에 붙는 부가세를 10%를 별도로 떼야 합니다. 주유소 마진이 휘발유 1리터에 43.17원이었으니 3.92원은 주유소가 내야하는 부가세액입니다. 카드수수료 25.48원에 부가세 3.92원을 더하면 29.4원입니다. 주유소 운영하면 생기는 비용의 일부죠. 이 비용을 총 마진에서 빼면 주유소에 떨어지는 돈은 휘발유 1리터에 13.77원입니다.

하지만 주유소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이외도 많습니다. 투자비용은 제외하더라도 매달 전기요금, 수도세, 인건비 등이 나가야 합니다. 남은 13.77원으로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최근 기름값 폭등에 문을 닫는 주유소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주유소가 가져가는 마진이 과도하다며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할인점 주유소 허용, 전국 주유소 가격공개 사이트 개설, 주유소-대리점의 수평거래 허용, 석유제품 수입 할당관세 인하 등 '줄줄이 사탕' 형식으로 내놨습니다.

속셈은 뻔하죠. 휘발유나 경유에 붙는 무지막지한 세금을 깎아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지난 3월 탄력세율을 조정해 유류세를 조금 내리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올 연말까지 한시적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때 공약한 유류세율 인하는 감감 무소식입니다.

정부의 소나기식 대책이 유통마진을 줄이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휘발유, 경유의 유통 비용을 되레 늘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정부는 지난해 휘발유, 경유에 붙는 교통세(교통-환경-에너지세)로 11조5000억원을 걷었습니다. 2006년보다 휘발유와 경유 사용량은 각각 4.1%, 2% 늘었지만 세금은 19.5%나 더 걷혔습니다. 여기에 따라붙는 교육세, 주행세, 부가세를 포함하면 20조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이 세금을 징수하는 비용 중 많은 부분을 주유소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앞에 언급한 주유소에서 기자가 휘발유 3만어치를 넣고 신용카드로 결제했다고 가정해보죠.
기자가 지불한 3만원 중 교통세 등 유류세(1리터에 670.24원)와 부가세(1리터에 154.42원)는 총 14563원입니다. 휘발유값의 48.5%가 세금입니다. 휘발유 값 3만원을 신용카드로 계산했다면 주유소가 부담해야 하는 카드수수료는 450원으로 이중 218원은 정부의 세금걷는 비용을 대신 내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휘발유 1리터로 환산하면 12.36원꼴입니다.

지난 2월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07 국세징수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휘발유 소비량은 6242만7000배럴입니다. 리터로 환산하면 99억2489만리터입니다. 이중 모두가 주유소로 통해 팔려나가는 것은 아니죠.

한국주유소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전국 전유소에서 판매한 휘발유는 총 88억8761리터입니다. 2007년엔 전년보다 4.1%가 증가했다고 하니 지난해 휘발유의 주유소 판매량은 92억5000만리터입니다.

현재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계산할 때 신용카드 결제비율은 90%에 조금 못 미친다고 합니다. 휘발유 판매량으로 따지면 83억리터 정도입니다. 위에 언급한대로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 휘발유 1리터에 붙는 세금 징수 카드수수료는 12.36원입니다. 이를 휘발유 판매량 83억여 리터와 곱하면 1029억원이 됩니다.

휘발유에 붙는 세금을 걷어주기 위해 주유소는 1년에 1000억원을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죠. 정부가 과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기자는 작년 7월 경유까지 포함해 계산해 보았습니다(http://blog.joins.com/n127/8274076). 이후 유류세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지난해 주유소가 휘발유, 경유를 팔며 세금 걷어주는데 들어간 비용은 2100억원이 넘었습니다.

노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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