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콘텐트’무기로 방송시장 뒤집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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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럽보다 인터넷TV(IPTV) 분야에서 수년은 뒤졌다는 미국의 움직임이 올 들어 심상찮다. 2005년과 2006년에 각각 IPTV 초보단계 서비스를 시작한 통신공룡 버라이즌과 AT&T가 올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 본격 비즈니스에 나선 것이다. 쌍방향 디지털 기능이라는 첨단기술에 대외경쟁력이 있는 ‘할리우드’ 콘텐트가 결합돼 케이블TV가 장악한 미국 방송시장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들은 올해를 ‘IPTV 대중화의 원년’으로 평가한다.

지난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북쪽의 부촌인 패서디나에 자리 잡은 AT&T 캘리포니아 사무실. 1층 쇼룸에는 IPTV인 ‘U-버스(verse)’ 광고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안내 직원들이 방문고객들에게 리모컨으로 TV 화면에 나타난 다양한 메뉴를 선택해 가며 뉴스·영화·스포츠·게임 등 수많은 동영상 디지털 콘텐트들을 보여주는 IPTV 시연을 수시로 했다.

TV 화면 한쪽에는 선택한 방송 프로그램이 언제 시작됐고, 남은 방영 시간이 얼마인지 상세한 데이터가 표시됐다. 브렛 도우브로스 세일즈 매니저는 “U-버스는 고화질 동영상 같은 품질 좋은 콘텐트가 케이블TV보다 다양하면서 이용료는 싸다”고 설명했다. 고화질(HD) 프로그램의 경우 24시간, 일반 콘텐트는 120시간 분량을 개인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미국 최초의 IPTV ‘파이오스(FiOS) TV’를 선보인 버라이즌도 콘텐트를 무기로 케이블TV에 선전포고했다. 파이오스TV는 400여 채널에서 8000여 가지 콘텐트를 쏟아낸다. 연말까지 HD 채널을 150여 개로, HD 영화를 1000여 편으로 늘리는 등 콘텐트 차별화와 다양화를 추진한다. 파이오스는 가입자가 최근 60만 명을 넘으면서 워싱턴DC 등지에서는 자체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해 서비스하는 로컬 채널까지 나올 정도다. 일부에선 케이블TV를 넘어서는 인기를 끄는 것이다.

인터넷 장비업계도 미국 IPTV의 강점을 콘텐트로 본다. 세계 최대 IPTV 장비회사인 주니퍼의 본사(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서 만난 앤드루 코워드 프로덕트 마케팅 부사장은 “유럽에 비해 IPTV 후발주자인 미국 IPTV 사업자들은 콘텐트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동영상 콘텐트의 강자인 할리우드 영화와 유튜브 UCC 등을 앞세워 세계 IPTV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TV가 일방적으로 콘텐트를 쏴주던 시대는 지났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IPTV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세계 IPTV 장비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내년 2월부터 미국 지상파 및 케이블TV가 프로그램을 디지털로 전환하면 미국의 디지털 콘텐트 산업은 날개를 단다. 한국 정부 산하기관인 ‘KIICA 실리콘밸리’의 이종훈 소장은 “미국 콘텐트 회사들이 경쟁력 있는 동영상 프로그램을 HD 콘텐트로 만들고, IPTV 사업자들이 이를 서비스하면 미국은 차세대 디지털 방송 시장의 맹주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첨단 디지털 기술도 우수한 콘텐트와 함께 전 세계 IPTV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언제 어디에서나 유무선 인터넷 접근이 가능한 ‘유비쿼터스 기술’은 IPTV를 ‘거실 TV’가 아닌 ‘손 안의 TV’로 발전시킬 전망이다. 스프린트넥스텔은 손 안의 TV용 단말기인 모바일 와이맥스(한국명 와이브로, 휴대인터넷)를 조만간 서비스할 계획이다. 세계 1위 인터넷장비회사인 시스코시스템스의 제프 스파그놀라 부사장은 “한국의 KT·KTF의 통합 소식은 의미가 있다”며 “언제 어디서나 개인휴대단말기로 IPTV를 볼 수 있으면 소비자는 이용료를 아깝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애플은 최근 ‘애플TV’(TV를 인터넷에 연결하는 셋톱박스)를 선보이는 등 미국 하드웨어 업계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CEO는 연초 애플TV로 온라인 영화 대여업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에는 터치스톤픽처·MGM·20세기폭스·워너브러더스·월트디즈니·유니버설 같은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동참할 예정이다. 온라인 IT뉴스사이트인 ‘실리콘밸리닷컴’은 최근 인터넷 접속 기능이 담긴 TV가 미디어 산업의 지형을 바꿀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별취재팀=이원호(미국)·이나리(유럽)·김창우(아시아) 기자, 최형규 홍콩특파원, 김동호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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