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규제 풀어 ‘IPTV 천국’ 한국, 규제 묶여 ‘5년 허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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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관한 한 유럽은 후발 주자다. 하지만 인터넷(IP) TV에선 가장 앞서 있다. 앞으로 방송과 통신이 융합될 것으로 보고 일찍부터 규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IP TV에선 이제야 걸음마 준비를 하고 있다. 방송계와 통신업계의 5년간 지루한 밥그릇 싸움 탓에 선두를 놓치고 만 것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번화한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프랑스텔레콤 매장을 지난달 찾았다. 여러 고객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한 달에 29.9유로(약 4만8000원)만 내면 IP TV에 초고속 인터넷과 인터넷 전화까지 쓸 수 있다”는 점원의 설명에 40대 주부 프라디에 크리스틴은 바로 계약했다. 점원은 “요즘 이 상품의 인기가 제일 높다”고 말했다.

현재 프랑스의 IP TV 가입자는 400만 명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다. 영국은 2000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IP TV 서비스를 시작했다. 유럽은 이미 8년 전 IP TV로 차세대 통신·방송 융합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프랑스통신위원회의 가브리엘 고테 상임위원은 “프랑스 IP TV 시장은 해마다 배로 성장하며 뉴미디어 시장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IP TV를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하면서 관련 규제를 과감히 털어 버린 덕분이다. EU 회원국들이 앞다퉈 IP TV를 서비스하는 바람에 관련 상품들도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자연히 가격은 내려가고 더 좋은 서비스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영향 받아 미국도 올해 AT&T나 버라이즌 등 통신회사들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며 본격적인 IP TV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미국 IP TV는 최첨단 광통신망 인프라에 다양하고 재미있는 ‘할리우드’ 콘텐트가 가미돼 경쟁력이 뛰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AT&T 캘리포니아의 다니엘 그레이 IP TV 책임자는 “미국 IP TV는 올해 본격적인 서비스에 나서 대중화까지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싱가포르·홍콩 등 아시아에서도 IP TV가 통신과 방송의 대표 서비스로 떠오르고 있다. 싱가포르텔레콤의 퀙 펙 렝 부사장은 “통신업체로서 IP TV는 기존 통신시장을 지키면서 새로운 방통 융합시장을 이끌 수 있는 차세대 키워드”라고 말했다.

글로벌 IP TV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전 세계 IP TV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향후 가입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관련법의 시행령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IP TV 서비스에 주된 걸림돌이었던 지상파 TV의 콘텐트 공급에 대해선 지금도 방송계와 통신업계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상용 서비스는 일러야 10월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서울대 강남준(언론정보학) 교수 는 “정부가 유럽처럼 IP TV 규제를 완전히 풀어야 자유로운 경쟁체제에서 시장이 활성화되고, 관련 산업이 커지며, 서비스 요금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이원호(미국)·이나리(유럽)·김창우(아시아) 기자, 최형규 홍콩특파원, 김동호 도쿄특파원

◇IP(Internet Protocol) TV=초고속 인터넷망에 연결된 TV로 지상파 방송프로그램이나 주문형 동영상(영화)을 보고,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까지 할 수 있는 차세대 쌍방향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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