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책같은 도시,도시같은 책" 황기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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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0월 문화의 달을 맞아 서점계가 비상이다.사람들이 단풍구경등 나들이에 정신을 빼앗겨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데 마음은 더욱 여위어만 가고있다.이같은 현실에서 「도시를 읽자」는 기이한 구호를 나지막하게 외 치는 사람이있다. 바로 서울대 환경조경학과 황기원(黃琪源.47)교수다.『책같은 도시 도시같은 책』(열화당)이란 제목의 야릇한 수상집을내놓은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도시에서만 살아온 진짜배기도시인.그런데도 그가 「도시를 읽자」고 새삼 목청을 가다듬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인들은 눈앞의 현상만 보고 속에 담긴 의미를 여유있게 반추하지 못합니다.기계처럼 꽉 짜인 일상의 틀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까요.도시의 삶이 삭막하다,메마르다 하는 말은 모두이 때문이죠.그러나 꼼꼼히 도시를 돌아보세요.구 석구석에 배어있는 사람들의 세심한 숨결이 따스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황교수는 책과 도시는 닮은 점이 많다고 말한다.단어가 모여 문장을이루고 문장이 모여 하나의 책이 되듯 사람이 모여 동네를 이루고 동네가 모여 도시를 이룬다는 것.따라서 책제작이나 도시건설을 같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고 책읽기와 도시읽기는 결국 동일한 목표를 지향한다고 설명한다.
『책같은 도시…』도 마치 작은 마을을 만들듯 저자가 이마을 저마을 발품을 팔고 다니며 순간순간 느낀 점을 67편의 에세이에 빚어내고 있다.그가 직접 찍은 사진 140여장과 그의 손에서 나온 표지그림 탓인지 일종의 그림책을 연상케한 다.문학적 은유와 미술적 이미지가 넘치는 간결한 문체도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황교수가 말하는 도시는 서울같은 대도시만은 아니다.작은 마을처럼 「나홀로 더불어」사는 모든 곳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하지만 한국사람 10명 가운데 8명 정도가 이른바 산업도시에사는 만큼 그의 주요 관심도 어쩔 수 없이 대도 시에 집중된다.때로는 현미경을,때로는 망원경을 통해 보듯 샅샅이 헤아려본다. 『지금도 틈만나면 하릴없이 도시를 싸돌아다닙니다.비록 명승지는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도시를 돌아다니다보면 아무리 하잘것없는 사물까지도 신비하고 존엄한 존재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지요.』그래서인지 그는 기념사진을 찍는데 급급한 일반인들의 관광행태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그보다는 차라리 저녁이나 공휴일에 차분하게 자기마을을 음미하라고 권한다.
그러면 자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라면서. 황교수는 다른 문명비판서처럼 산업도시의 해악을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아무리 황량한 곳이라도 애달픈 삶의 정겨움이 담겨 있다고나 할까.환경오염이나 무계획적인 도시개발을 매섭게 질타하지만 따뜻한 문학적 감성으로 악취가 풍기는 쓰 레기나 시커먼 폐수조차 껴안으려고 시도한다.특히 그는 「아름답다」는 말을 강조했다.아름다움은 단순한 예술미가 아니라 「한아름」이란 말처럼 주위의 모든 사물을 두팔로 부둥켜안는 행동이란 것.그렇다고 현재를 무조건 긍정하란 것은 아니다 .단지 어두운 부분도애정있게 응시하라고 주문한다.잿빛도시에서 무지개빛을 꿈꾸는 중견학자의 소망이 얼마나 이뤄질지 못내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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