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갇힌 아이들] 3. 인권위와 공동 기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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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위생.영양 미흡→불건강→저생산성→빈곤. 미국의 경제학자 래그나 누르크세가 제시한 빈곤과 건강의 악순환이다. 창훈(11)네는 3대에 걸쳐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빛 하나 안 들어오는 서울 수색동의 지하방. 창훈이는 할머니(68)와 단둘이 산다. 할머니가 빌딩 청소부로 일하면서 버는 52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초등학교 5학년인 창훈이의 학습 능력은 미취학 아동 수준이다. 지능 수준이 한참 떨어진다. 어릴 적 열이 심하게 날 때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후유증 때문이다. 창훈이는 결핵을 앓기도 했다. 지금 노숙자로 전락한 창훈이의 아버지도 평생 결핵으로 시달려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할머니부터 창훈이까지 3대 병력을 추적했다. 빈곤과 질병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20대부터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할머니를 평생 괴롭혀온 신경통은 황소바람 들이치는 나무벽과 냉골 방바닥 생활에서 비롯됐다. 지금의 지긋지긋한 허리 통증은 30년 넘도록 이어진 청소부 생활과 무관치 않다. 가난은 질병의 다른 말이었다. 외아들이 결핵 증세를 처음 보인 것도 하루 세끼를 못 채우던 판잣집 생활 때다. 할머니는 당신의 어머니가 돌아갔던 1986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평소 아픈 티 한번 안 냈던 어머니는 한달간 피를 토하다 숨졌다. 어머니의 병명은 위암. 사망 후 진단에서야 알았다고 한다.

인권위 연구팀은 "창훈이네 가계를 통해 질병으로 빈곤이 시작됐고 빈곤은 질병 때문에 악화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3대가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을 겪는 동안 정부의 역할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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