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비자금의혹 이번엔 끝장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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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직대통령 비자금의혹은 이제 더이상 흐리멍텅하게 넘어갈 수 없게 됐다.박계동(朴啓東)의원이 국회에서 주장한 내용을 보면 구체적이고 신빙성있게 여겨지는 대목이 다수 있는만큼 그런 사실을 토대로 이번에는 반드시 진상을 밝히고 이 문제 를 결판내야한다. 비자금의혹설(說)이 터진게 벌써 언제인가.지난 8월1일서석재(徐錫宰)전총무처장관의 발설이후 함승희(咸承熙)전검사의 책자에 의한 폭로,국회에서의 잇따른 문제제기등으로 이 문제는 검찰의 「사실무근」이란 수사발표가 있은 후에도 오히려 증폭돼왔다.마침내 박계동의원의 결정적(?) 폭로까지 나왔으니 이제는 당국과 당사자및 관련자들이 모두 적극 나서 진상을 규명하고 의혹을 씻어야 한다.
먼저 검찰은 박의원이 구체적으로 차명(借名)예금주와 계좌번호.입금(入金)날짜.은행의 실무자이름까지 다 밝힌만큼 적극적으로수사에 나서야 한다.그리하여 실제 돈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밝히고,그 돈이 어떻게 조성됐으며,그 과정에 불법성 은 없는지를 모두 가려내야 한다.
지난번 서 전장관의 발설을 수사할 때처럼 시중 루머를 추적하다가 「사실무근」이란 결론을 내릴 일이 아니다.당장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입금된 300억원의 돈은 엄연한 실체(實體)인만큼이 돈에 관련된 모든 사항부터 빠른 기간에 밝혀 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함 전검사가 말하고 있는 대기업회장에 의한 거액실명화(實名化)주장도 시중의 루머차원과는 다른 주장인만큼 이번 기회에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비자금의혹설에 오르내리고 있는 모든 당사자.관련자.심부름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문제가 이 지경에 온 이상 스스로 입을 열어 진상을 공개하라는 것이다.우리는 문제의 비자금의혹이 나오고 있는 6공(共)기간에 유례없이 부패가 심했다는 점에서 당사자들이 입을 닫고만 있을 경우 국민들은 의혹을사실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우선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부터 기자회견을 갖고 허심탄회하게,국민이 믿을 수 있게 입장을 밝혀주면 좋겠다.또 그 의 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알려진 이원조(李源祚)전의원도 이젠 입을 열어야 한다.이번에도이씨는 비자금은닉용 차명계좌를 마련하는데 직접 관여한 것으로 주장되고 있고,그밖에도 동화은행 비자금사건등 많은 의혹의 중심인물이다.이씨 스스로 이 나라를 좀더 깨끗한 나라로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자기가 한 일과 아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기를 권고한다.
그밖에 은행관계자와 전주(錢主)-은행사이를 왕래한 심부름한 사람등 다소라도 관련있는 모든 사람들이 입을 열어 진상규명에 협조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당사자와 관련자들이 스스로 밝히지 않을 경우 이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그들의 입을 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정부도 마침내 조사하기로 방침을 정했으니 필요한 모든 사람을 상대로 수사를 벌여 의혹의 모든 측면을 남김없이 밝혀 내야 한다.
박의원이 밝힌 구체적 사실이 있는만큼 제대로 성실히 수사한다면진상규명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처럼 집중적인 수사와 관련자들의 최대한 협조로 이 컴컴하고불쾌한 의혹의 늪에서 우리 모두가 빨리 벗어나야 한다.정치권력으로 몇천억원이란 상상도 못할 거액을 만들어 숨겨두고 있다는 이런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성실하게 일하며 생 계를 꾸려가는많은 선량한 보통국민들을 좌절시키고 일할 의욕을 깎아내리게 된다.「권력에 줄대는 길을 찾지,나는 왜 뼈빠지게 일해야 하는가」하는 허망감을 누군들 안갖겠는가.이처럼 국민의 일할 의욕을 꺾는 무서운 독소를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안고 갈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비자금의혹은 철저하고 투명하게 끝장을 봐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이 나라에 권력으로 치부(致富)하고,치부해도 별탈없이 넘어가더라고 생각할 소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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