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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푸드플러스] 봄 그리고 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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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뭘 해먹나?" 토요일이 가까워지면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주부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일주일에 한두번 앞치마를 두르는 맞벌이주부든 매 끼니 밥상을 차리는 전업주부든 마찬가지다. 주부들의 주말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푸드스타일리스트 노영희씨가 나섰다.

요리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가며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담는 그릇이나 방법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점을 감안해 맛있게 담는 요령도 곁들인다.

봄이 완연합니다. 멀리 보이는 잔디밭의 색이 초록을 띠고, 목련의 꽃봉오리가 봉긋해졌네요. 점심 때 식당에 들어섰는데 달래 된장찌개 냄새가 확 풍기더군요. 입 속에 침이 고이면서 머릿속에선 어린 시절 추억들이 2배속 필름처럼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양지바른 곳에는 냉이가 낮은 포복으로 땅을 기고, 논두렁엔 쑥이 고개를 내밀던 그런 광경들 말이에요.

제가 자랄 때만 해도 먹거리가 그리 흔치 않던 때라 이른 봄 돋아나는 새싹은 모두 먹거리였거든요. 우리가 늘 먹던 그런 나물들 말고도 말이에요. 논둑에 나는 찐득이.삘기, 박완서님의 책 제목에도 나오는 싱아나 찔레 등 새순은 우리의 훌륭한 간식거리였지요.

참, 시골이라서 떡이 유일한 간식이었는데 봄철이면 할머니 손길이 바빠지셨습니다. 뒷동산에 핀 진달래 꽃 따다가 찹쌀 반죽을 해서 동글납작하게 빚어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지지다가 진달래꽃 얹어서 부쳐 주셨답니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게 목련차였어요. 목련꽃잎을 따서 차를 우려 잔에 따르고 위에 고운 목련꽃 한 잎을 띄우고 보라색 제비꽃을 따 그 위에 다시 얹으셨던거예요. 어린 제가 보기에도 너무 너무 곱고 예뻤어요. 호기심에 떡도 먹고 차도 마셔보지만 그리 맛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먹어보니 담백한 것이 자연맛 그대로더라고요.

아마 쑥떡이나 쑥갠떡을 모르는 이는 없을 거예요. 할머니는 햇살이 좋을 때 쑥을 뜯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바로 쑥이 양기를 듬뿍 받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정도였던 것 같아요. '봄볕에는 딸을 내놓고, 가을볕에는 며느리를 내놓는다'는 말도 있듯이 봄볕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나 봅니다.

쑥을 뜯어다가는 쌀가루에 섞어서 찌는 쑥버무리, 밀가루에 섞어서 손바닥만하게 반대기를 만들어서 가마솥에 겅그레를 놓고 쪄주셨는데 그걸 개떡이라 했어요. 보기엔 시커먼 것이 절대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맛은 아니었거든요. 그 당시 꿀이나 설탕이 흔한 게 아니니 그저 쑥내음만 나는 그런 게 뭐이 그리 맛있었겠어요. 그런데 먹거리가 흔해진 요즘도 그런 할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네요.

또 한가지. 제가 음식 만드는 일을 하면서 깜짝 놀란 것이 있답니다. 느티떡이요. 느티나무 잎으로 떡을 만든다는 얘긴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야들야들한 느티나무 어린 잎을 따다가 쌀가루를 훌훌 섞어 찐 떡인데 그 맛이 정말 감동의 도가니였어요. 떡이 사각사각 씹힌다는 거요. 요즘 너나 나나 "웰빙 웰빙" 하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 웰빙이지 하면서 어린 시절이 잠시 그리워지네요. 봄 들판으로 나가 나물이며 새싹이며 꽃잎을 뜯어다가 손님 초대 한 번 해야겠어요.

노영희 푸드스타일리스트
사진=권혁재 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노영희씨는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맛깔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푸드스타일리스트. 샘표.오뚜기.CJ.맥도날드 등 국내외 식품업체 광고에 등장하는 수많은 요리를 제작했으며, 현재는 푸드채널'테이스트 오브 라이프'의 진행자로 일하고 있다.

◆진달래화전

▶재료(20개분)=찹쌀가루 2컵, 꿀 3큰술, 끓는 물 1~2큰술, 진달래꽃 20개, 식용유 약간, 설탕 적당량

▶떡 만들기

①찹쌀가루에 꿀을 넣고 싹싹 비벼 섞는다.
②뜨거운 물을 넣어 대충 섞은 다음 치대서 매끈하게 반죽한다. 반죽의 상태를 보고 물을 더 넣어 말랑하게 반죽한다.
③진달래는 수술을 떼어내고 씻어 물기를 걷는다.
④팬을 달궈 식용유를 두르고 약한 불로 줄인다.
⑤반죽을 20등분해 동글납작하게 빚어 팬에 지진다. 한 면이 말갛게 되면 뒤집어 진달래꽃을 붙이고 숟가락으로 살짝 눌러 모양을 잡아 다시 말갛게 되도록 익혀 꺼내 설탕을 묻힌다.

▶맛있게 담기=기름에 지지고 찰떡이라 접시에 들러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연한 청자 접시에 설탕을 뿌리고 담으면 훨씬 돋보인다.

이렇게 하면 설탕이나 꿀을 묻히지 않아도 된다. 진달래꽃을 녹두녹말을 묻혀 살짝 데친 다음 오미자 국물에 띄워 곁들어 내도 훌륭하다.

◆쑥갠떡

▶재료(15개분)=멥쌀가루 2컵(소금 약간), 쑥(데쳐서 물기 꼭 짜 다진 것) 60g, 설탕시럽(물 3큰술, 설탕 3/2큰술)

▶떡 만들기

①멥쌀가루에 소금을 약간 넣고 섞은 다음 쑥 다진 것을 넣고 손으로 비벼 섞는다.
②물에 설탕을 넣고 끓여 설탕이 녹으면 ①에 붓고 섞어 오래도록 치대 말랑하고 매끈하게 반죽을 한다.
③반죽을 15등분해 동그랗게 만든다. 랩을 깔고 반죽을 몇 개씩 서로 붙지 않을 정도의 간격을 놓고 얹은 다음 다시 랩을 씌우고 떡살로 찍는다.
④찜통에 젖은 면 보자기를 깔고 얹어 김이 오른 통 위에 얹어서 20분 정도 찐다.
⑤한 김 식혀 양손에 참기름을 바른 다음 떡을 한 개씩 비벼서 담는다. 식어야 쫄깃하고 맛있다.

▶맛있게 담기=고물이 없기 때문에 그릇에 붙거나 떡끼리 붙는 것을 막기 위해 나뭇잎 등을 활용하면 좋다. 긴 접시에 떡 사이사이 나뭇잎을 넣고 담아내거나 1인분 접시에 떡과 차를 함께 담아내는 것도 좋다.

◆느티떡

▶재료(지름 20cm 찜통 1개분)=멥쌀가루 3컵(꿀 1/4컵), 느티나무 잎 300g, 팥고물(거피팥 2컵, 소금 1작은술, 설탕 1/4컵)

▶팥고물 만들기

①거피팥은 물에 담가 푹 불려(4~6시간) 남은 껍질을 모두 벗기고 씻어 물기를 뺀다.
②김이 오른 찜통에 젖은 면을 깔고 팥을 얹어 30분 정도 찐다.
③뜨거울 때 체에 내려 가루를 낸다.
④팬으로 옮겨 설탕과 소금을 넣고 약한 볼에 주걱으로 저으면서 볶아 쏟아서 식힌다.

▶떡 만들기

①멥쌀가루에 꿀을 넣고 손으로 비벼 섞은 다음 체에 내린다.
②느티나무 잎은 아주 연한 것으로 준비해 깨끗이 씻어 물기를 걷는다.
③멥쌀가루에 느티나무 잎을 넣고 훌훌 섞는다.
④찜통에 젖은 면을 깔고 팥고물 1컵을 평평하게 편 다음 쌀가루와 느티나무 잎 섞은 것을 얹는다. 윗면을 평평하게 한 다음 팥고물 1컵을 다시 덮어 김이 오른 찜통에 얹어 30분 정도 쪄 쏟아서 한 김 식힌 다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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