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축제여행>2.부산 자갈치 축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단지에 가득 담긴 추억속에 곤쟁이젓 비릿하게/살아서 꼬리치는 부둣가엔 떨어져 튀는/비,멸치떼같은 비 학꽁치같은 비 물거품같고 생애같은/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하염없이/비』(김명인 시『연안부두의 비』중에서).
시(詩)속의 빗방울은 부두와 시장통을 어스레한 추억으로 적시고 있다.그러나 지난 15일 오후 부산 중심 해변인 남포동 자갈치 시장에 뿌린 비는 날궂이에 상관없이 이어지는 노동과 생업의 건강함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대형 비가리개 아래로 생선 좌판을 끌어당긴 상인들은 행인들에게 『보이소,싱싱한기라』를 외치며 자리를 지켰다.
거리쪽 시장입구에선 「제4회 자갈치 축제」(13~15일)마지막 날 행사가 빗속에서 열기를 뿜고 있었다.자갈치 아지매 솜씨자랑대회가 벌어지는 무대엔 횟집 대표 5명이 능란한 솜씨로 큼직한 도미 한마리씩을 회치고 있었다.
비때문에 행인이 적어 관전객들은 근처 상인을 주축으로 한 200여명에 불과했으나 지켜보는 열기는 출전선수 못지 않았다.
『지는 어패류 편인기라예.우리가 이겨야 안 합니꺼.』 앳된 얼굴에 눈이 맑은 처녀 종업원이 부산어패류처리조합과 신동아수산물종합시장간의 오랜 경쟁심을 대변했다(자갈치 3대시장의 나머지하나는 건어물시장이다).
저녁 무렵 비가 그치자 확성기 소리와 환한 조명에 끌려든 1천여명의 관중들이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빼며 「자갈치 아지매 선발대회」와 마지막 행사 「열린 음악회」를 끝까지 지켜봤다.
이 행사는 다양한 프로그램 들로 단순한 수산물 축제를 넘어 시민 전체의 문화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13일 전야제엔 풍물한마당에 이어 남해 용왕에게 자갈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용왕제(동해안 별신굿)가 열렸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길이 100에 달하는 14일의 개막식 축하 가장행렬.
고적대와 풍물패에 이어 용궁 선녀들을 태운 어선 「95 자갈치호」가 뒤따르고 고등어.전복등의 모형을 든 아지매들,건어물 등짐을 진 보부상,축제의 캐치프레이즈 「오이소!보이소!사이소!」를 쓴 만장이 가세했다.
행렬이 『쾡쾌쾡』가락에 맞춰 남포로를 거쳐 부산시청 앞까지 덩실춤을 추며 지나갈 때 연도의 상인.시민들은 함께 어깨를 덩실거리거나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14일 저녁 「자갈치 노래자랑 대회및 축하공연」엔 가수 김상국.채윤아.함중아.개그맨 이철구등이 출연해 자신들의 히트곡을 1,000여 관중들과 함께 열창하며 분위기를 돋웠다.
15일 끝난 자갈치 축제는 상인들이 연합한 남포동 발전추진위원회가 주관한 시장 행사지만 시민 전체의 축제로도 평가된다.
국내 최대의 어항기지인 부산 남항에 자리잡은 자갈치수산물 종합시장 자체가 부산의 명물로 시민과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 까닭이다. 이곳 오복주차장 관리원 노필용(54)씨는 『휴가나 연휴철에는 주차 차량의 반이상이 다른 지방에서 온 것』이라며 『부산에 오면 자갈치에 들러 시장의 각종 활어도 구경하고 회를 먹는 것이 일반적인 관광코스』라고 말했다.자갈치라는 이름 은 이곳 해안이 매립되기 전 자갈밭이었던 데서 유래했다.1946년 생선상인 조합으로 시작된 이 시장에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70년부터다.
지금은 3개의 대형 건물에 400여개의 점포,1,000여명의상인들이 자리잡고 연간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나 상권이위축되는 추세를 보이는게 고민이다.
남포동 발전추진위원회 안영근(부산중구의회의장.60)위원장은 『도심이 서면 쪽으로 이동하는데다 해운대.광안리 등지에 집이 늘어나는 탓』이라며『상인들간의 연대의식을 높이고 시민들의 친근감을 확대하기 위해 축제를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상인들의 참여열기도 뜨거워 1억원 가까운 예산이 걷혔으며 100여명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지난 여름 콜레라와 비브리오,적조현상 때문에 1개월여 개점휴업의 피해를 본 상인들은 『이제는 거의 회복되는 추세』라며 『축제에 모인 시민들의 호응으로 보아 앞날은 밝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