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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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네,무슨 말씀이신지….』 상운이 의아해 물었다.내가 권태롭다면 권태로운 거지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그냥 내가 상운씨 입장이라면 권태로울 것같지 않아서 드리는말씀입니다.』 민우가 가볍게 웃으면서 덧붙였다.
『선생님이 저라면 어떠시겠습니까?』 상운이 귀를 쫑긋이 세우고 물어왔다.민우는 잠시 언덕 아래를 내려다 봤다.안개는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설명을 하자면 길다.보통 노이로제 환자들 같으면 받아들일 태세가 안돼 있으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 사람은 총명하니 금방 알아들으리라.그리고 그 다음을 기획하리라.노이로제 환자들은 스스로 용기가 없어 삶에서 후퇴한 것이니 아무리 설명을 해준다고 해도 자기가 용기를 내지 않으면다 쓸모가 없다.그러나 사기꾼들은 환상이 강하고 목표가 뚜렷하니 상대 말을 충분히 들은 다음에 자기 중심적으로 상황을 재편한다.민우는 차가운 안개속에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상운에게 물었다. 『악마가 무어라고 생각합니까?』 『악마요? 인간을 해치는 존재죠.』 『신은요?』 『인간을 돕는 존재겠죠.성서 말이맞는다면….』 『상운씨는 종교를 믿습니까?』 『아뇨.저는 제 자신을 믿습니다.돈을 믿고 쾌락을 믿고 삶을 믿죠.선생님께서는종교가 있으십니까?』 『종교는 믿지만 특정종교를 믿는 것은 아직 없습니다.제가 워낙 게을러서요.그러나 종교의 여러가지 교리에는 저도 모르게 관심이 쏠리곤 합니다.집착이 고뇌의 원인이니집착을 멸하면 도에 이르리라는 「고집멸도」나 마음을 비우면 길이 보 인다는 「무심지도」는 아직까지 저를 사로잡고 있는 선문답이죠.』 『악마와 신이 제 권태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겁니까.』 『제가 볼 때 악마는 삶이고 신은 생명입니다.』 민우는 흥미롭게 바라보는 상운에게 이렇게 얘기를 시작했다.
『「몸이 죽고 부활함을 믿습니까?」「생명이 영원함을 믿습니까?」「생명의 신비여!」… 성당에 가면 늘 듣는 소리입니다.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한동안 의문에 빠졌었습니다.왜 성당에서 하느님이나 예수님 얘기는 하지 않고 저런 얘기를 하 는 걸까? 신과 생명의 관계는 어떠한 것이길래…그래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수십억년전 지구상에 처음 생명이 출현하고 소멸할 때 생명의 가장 큰 과제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생명이라 하더라도 자연계에서의 생존은 힘겨울 수밖에 없었죠.그런데 이런 얘기 좋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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