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라운지] 큰 비행기도 날아갈 땐 “작은 새가 무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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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활주로를 이륙한 뒤 시속 370~380㎞로 상승하던 비행기가 1㎏도 안 되는 청둥오리와 부딪쳤다면? 청둥오리는 즉사하지만 비행기는 끄떡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비행기가 받는 충격은 5t 이 넘는다. 조종실 유리가 깨지거나 기체 일부가 찌그러질 수 있는 수준이다. 움직이는 물체끼리 가속도가 붙기 때문이다.

바로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조류 충돌)’다. 항공기와 새가 부딪치는 현상이다. 시속 900㎞로 비행 중인 항공기가 1.8㎏짜리 새와 부딪치면 기체가 받는 충격이 60t이 넘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행히 순항 중인 경우는 고도가 높아 새를 만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문제는 이륙과 상승, 하강과 착륙 중에는 새와 부딪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외국의 버드 스트라이크 사고 중에는 동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대형 조류가 조종석 입구까지 뚫고 들어왔다는 보고도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새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다. 엔진 내부를 망가뜨리거나 심하면 엔진을 태워버릴 수도 있다. 새 한 마리가 비행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비행기 제작사들은 버드 스트라이크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조종석 유리창을 특별히 여러 겹으로 만든다. 엔진 개발 단계에서 실제 새를 빨아들인 상황에서도 일정 기준 이상의 출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실험도 한다.

공항도 버드 스트라이크 방지에 골머리를 앓는다. 새를 쫓기 위한 엽총과 각종 음향기를 갖춘 조류퇴치팀을 운영한다. 인천공항에서는 아예 새들이 서식할 가능성이 있는 공항 주변 소규모 하천을 모두 보도블록으로 메워버렸다. 인근 골프장에는 새들이 날아들까 봐 큰 나무를 심지 못하도록 했다.

국내에서는 한 해 평균 70건가량의 버드 스트라이크가 발생한다. 철새가 많은 가을과 초겨울에 집중된다. 항공기 입장에서는 가장 두려운 계절이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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