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유럽문단 혜성 쥐스팀 레비.알랭 드 보통 번역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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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단 한권의 소설로 유럽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두 신세대 작가의 작품이 나란히 번역돼 나와 화제다.쥐스틴 레비(21)의 『만남』(초윤정 옮김.민음사.원제:Le rendez-vous)과알랭 드 보통(26)의 『로맨스』(김한영 옮김. 한뜻.원제:Essays in Love)가 그것.
레비는 프랑스 신철학의 기수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딸로 현재 소르본大 철학과에 재학중이며 올해 자전적 얘기를 담은 『만남』을 발표하면서 「제2의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보통은 스위스의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케임브리지大 역사학과를 수석졸업한 수재로 93년 발표한 『로맨스』는 10여개 국어로 번역되는등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두 작품이 관심을 끄는 것은 기존의 문학적 경향과는 판이한 감수성과 접근방식 때문이다.
자전적 얘기를 담은 『만남』은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와의 애증을 섬세한 필치로 그린 작품이다.소설은 작가의 분신인 루이즈가 카페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취한다.루이즈의 엄마는 전직 모델 출신으로 이혼한 뒤부터 방탕한 생활을한다.알콜과 마약.1회용 애인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소모시키면서 그녀가 집착하는 한가지는 루이즈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다.그러나 루이즈의 엄마는 천성적으로 결혼생활을 하기 어려운유목민같은 성향의 소유자다.소설은 극적인 줄거리도 없이 루이즈가 엄마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들로 가득하다.이 방면에서 레비는 남다른 재능을 보인다.
『무기질은 중요한 거다.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중요하긴 중요할 거다.엄마가 매일 아침 담배를 피우기 전 무기질 약을 먹던걸 보면.하루에 네갑씩이었다.어떻게 그렇게 담배를 많이피울 수 있지? 간단해 의지력 문제지 뭐.엄만 이렇게 말하곤 했지.』 레비는 발랄하고 간결한 어법을 구사하면서도 행간에서 슬픔이 스며 나오는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이처럼 격렬한감정을 부드러우면서도 집요하게 풀어내는 감수성이 바로 레비의 매력이다.
보통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그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그것도 어려운 철학을 인용해 가며 장광설의 궤변을 늘어놓는다.애인의 이미지를 설명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을 들먹이고 치아형을 설명하면서 플라톤을 인용한다.보통이 노리는 것은 토사물처럼 쏟아내는 이 철학적 궤변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통해 사물을 다르게 보여주자는 것이다.
『나는 클로의 이빨이 내게 갖는 의미를 아무도 짐작할 수 없으리란 그 사실,그 비밀,내 욕망의 난해성을 좋아했다.그녀는 플라톤주의자 눈에는 예쁘게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나는 추함과 고전적 아름다움 사이의 진폭에서 미를 발견했 다.』 『로맨스』는 이와같은 방식으로 남녀간의 사랑이 무엇인가를말하고 있는 작품이다.소설의 줄거리는 비행기 안에서 만난 남녀가 사랑하다 싸우고 헤어진다는 연애소설의 전형적 흐름을 따르고있다.그러나 사랑의 심리를 온갖 지식을 동원해 설 명하는 보통의 입담은 이 소설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시켜 놓는다.그는 지극히 평범한 것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는데 천부적 재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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