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29.청자양각 연당초문 정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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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일본의 가을은 미술관 전시로부터 시작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4백여곳을 헤아리는 크고 작은 미술관.박물관에서는 일제히 추계특별전이 개최된다.
도쿄(東京)의 이름난 패션거리인 아오야마(靑山)일대도 이때는미술거리로 변모한다.이곳 남쪽끝 미나미아오야먀(南靑山)에 있는유서깊은 사설미술관인 네즈(根津)미술관이 특별전을 개최해 수많은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연일 끌어들이기 때문 이다.
한국을 비롯,중국.일본의 미술품 1만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네즈미술관의 특별전은 언제나 인기높다.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의줄이 미술관 담장밖까지 길게 늘어서는 것도 보통이다.
지난해 특별전은 『불교조각전』.올해는 교토(京都)의 선종문화와 귀족문화를 대표하는 『상국사 금각 은각 명보전(相國寺 金閣銀閣 名寶展)』이 특별전으로 마련돼 9월15일부터 10월27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네즈미술관을 찾는 연간 관람객수는 20만명을 넘는다.그 가운데 많은 숫자가 특별전기간에 다녀가지만 평소에도 이곳을 찾는 발걸음은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곳에 연중 상설전시되고 있는 유명 다기(茶器)들의 매력 때문이다.
다기는 다도(茶道)가 생활문화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일본에선 보통이상의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네즈미술관에는 다기예찬이 시작된 16세기부터 일본사회에 대대로 전해내려온 유명 다기 1백점 이상이 소장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이곳의 설립자인 네즈 가이치로(根津嘉一郎.1860~1940)가 직접 수집한 것들이다.이곳 다기컬렉션의 특징은 비젠(備前)같은 일본다기는 거의 없고 고려다완 일색이라는 점에 있다.
고려다완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라기보다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건너온 다완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이다.그 대부분은 조선시대초 경상도 남부지방의 이름없는 민간가마에서 만든 것들이다.
일견 투박하게 보이는 고려다완은 와비차(侘茶)에 제격이라고 해서 모모야마(桃山)시대부터 다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네즈미술관에 있는 1백여점을 넘는 고려다완 가운데는 굽다리에유약이 뭉쳐있는 『사카이(さかい)』명(銘)이도(井戶)다완과 마치 천장에 비가 샌 얼룩처럼 보이는 아마모리(雨漏)다완등 6점이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네즈미술관 학 예원 요시오카(吉岡明美)는 『다완도 중요하지만 국제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미술관이 자랑하는 한국미술품은 오히려 고려청자 정병』이라고 말하고 있다.
녀가 거론한 정병(淨甁)은 청자양각연당초문정병(靑瓷陽刻嚥唐草紋淨甁)을 말한다.이 역시 현재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녀의 말은 고려다완이 와비차를 즐기는 일본인들의 미의식에 딱들어 맞기는 하지만 이는 일본에서만 통용되는 문화며 문화재란 얘기다.
그렇지만 이 정병은 한마디로 세계적 수준의 문화재며 도자기라는 것. 동양 3국 가운데 중국과 한국에서만 일찍부터 자기(磁器)문화가 발달했는데 이 정병은 특히 청자부문에서 세계 도자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명품이라는 것이다.
정병은 원래 부처님에게 공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구(佛具)의하나다.고려시대 「수월관음도」에서는 정병에 대나무 가지가 꽂힌모습이 자주 등장한다.또 고려시대 기록에는 민간에서 정병을 물을 담아쓰는 도구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이 정병은 고려시대 도자기로 만든 정병 가운데 최고 솜씨를 자랑하는 명품이다.
우선 투명할 정도로 맑고 깨끗한 유약색이 일품이다.미세한 빙렬이 표면에 고르게 퍼져 있는 모습은 특히 일본에서 감탄하는 대목이다.
형태에서 우러나오는 곡선의 아름다움도 고려청자 가운데 최상급을 자랑한다.몸체의 아랫도리에서 안정감을 주며 부드럽게 솟아오른 곡선은 어깨위에서부터 병목까지 빨려올라가듯 속도감있게 쭉뻗어 있다.
이런 선의 모습은 고려시대 공예품에 담긴 여성적이며 우아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병 전체에 꽉차게 새겨진 문양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로움까지전해준다.
문양을 위에서부터 살펴보면 병꼭대기에서 뚜껑처럼 생긴 마디까지 구름처럼 보이는 당초절지문(唐草折枝文)이 새겨져 있다.
또 마디에는 반양각의 연판문(蓮瓣文)이,그리고 목부분에는 또다시 당초절지문이 차례로 음각돼 있다.
그 아래는 여의두문(如意頭文)에서부터 시작해 당초문.연화문.
모란문의 형상이 몸통 전체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래는 또다시 뇌문(雷文)과 당초문을 새겨 바닥과 이어지는 마무리 장식으로 삼았다.
문양이 온통 병전체를 뒤덮은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전체 인상은 어수선하지 않고 차분하며 가라앉은 분위기로 다가온다.
이런 모습은 마치 고려불화의 한부분 한부분이 극히 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려졌지만 크게보 면 원만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과비슷하다.
더욱이 이 정병 바닥에는 「효구각(孝久刻)」이란 문자가 새겨져 있다.문양을 새긴 사람이 「효구」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鄭良謨)관장은 『고려청자에 가끔씩 글자가 새겨진 것이 보이지만 이처럼 각공(刻工)의 이름이 새겨진 예는 극히 드물다』고 말한다.
또 鄭관장은 『유려한 선과 투명한 유약색,그리고 활달한 문양을 살펴보면 이 정병이 청자제작에 자신감이 넘쳤던 전성기의 걸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하고 있다.
〈다음은 金銅半跏思惟像입니다〉 글:尹哲圭기자 사진:崔正東기자.네즈미술관제공 자문위원: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洪潤植 동국대박물관장 安輝濬 前서울대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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