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 ‘레스토랑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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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右>이 6일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함께 도쿄 지요다구 히비야 공원 안에 있는 양식당 마쓰모토로에 들어서고 있다. 양국 정상 부부는 이곳에서 비공식 저녁식사를 했다. [도쿄 지지(時事)]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6일 오후 일본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해 닷새 일정의 국빈 방문을 시작했다. 중국 주석으로는 1998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방일 이후 10년 만이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와 후 주석은 이날 저녁 이례적인 ‘레스토랑 외교’로 친밀감을 과시했다.

두 사람은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히비야(日比谷) 공원 안에 있는 양식당 마쓰모토로(松本樓)에서 부부 동반으로 비공식 저녁 식사를 했다. 1903년 히비야 공원과 함께 문을 연 이 식당은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孫文)이 자주 찾던 곳이다. 초대 사장인 우메야 쇼키치(梅屋庄吉)는 일본에 망명 중이던 쑨원을 적극 후원했으며, 1915년엔 자신의 집에서 쑨원과 쑹칭링(宋慶齡)의 결혼식을 올려주기도 했다. 그래서 이 식당에는 쑹칭링이 치던 피아노와 쑨원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평소 쑨원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해온 후 주석을 위해 후쿠다 총리가 특별히 이곳을 첫날 저녁 식사 장소로 정했다고 한다.

비슷한 ‘레스토랑 외교’는 2002년 2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도 있었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시 대통령은 그를 텍사스에 있는 자신의 크로퍼드 목장으로 초대해 ‘별장 외교’를 펼쳤다. 다음해 부시 대통령이 일본을 찾자 고이즈미 총리는 롯폰기의 전통 이자카야(선술집)에서 대접했다. 공식 만찬 대신 간편한 복장으로 두 사람이 이자카야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사진은 전 세계에 타전됐고, 본격적인 미·일 동맹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후쿠다 총리도 급속도로 가까워진 중·일 관계를 과시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후쿠다 총리 공식 만찬은 8일에 열린다.

후 주석은 7일에는 일왕을 만나고, 저녁에는 왕궁 연회장인 ‘호메이덴(豊明殿)’에서 열리는 만찬에 참석한다. 왕궁 주방은 통상 두 달 전부터 만찬 메뉴를 준비한다. 메뉴는 국빈의 종교·식성·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정해지지만, 전통적으로 프랑스 코스 요리로 차려진다. 일왕이 만찬장에서 인사말을 건네면 국빈이 답례의 말로 건배를 제의한 후 식사가 시작된다. 코스 요리는 맑은 고기 수프인 콩소메로 시작한다. 이후 메뉴는 프랑스 요리를 모델로 해 일본 고유의 식자재를 십분 활용한 퓨전 요리다.

장쩌민 전 주석이 방일했을 때는 중국산 상어지느러미와 흰 목이버섯을 넣은 콩소메 수프, 영계 훈제 냉채, 도미 조림, 은행을 넣은 밥, 양고기 스테이크 등이 차려졌다.

한편 6일 비공식 만찬에서 후 주석은 일본 측에 판다 한 쌍을 대여해 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교도(共同)통신이 보도했다. 중국이 일본에 기증했던 자이언트 판다 ‘링링’이 지난달 30일 사망하자 일본 정부는 중국에 암수 한 쌍을 대여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 후 주석은 방일 직전인 4일 베이징(北京)에서 일본 기자들과의 회견 자리에서 “우리는 일본 국민의 바람을 이해하고 있다”고 언급, 판다 대여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임을 시사한 바 있다. 수컷 판다인 ‘링링’은 92년 베이징동물원에서 도쿄 우에노동물원으로 옮겨온 뒤 ‘중·일 우호의 사절’로 불려 왔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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