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광우병 발생해도 수입금지 못한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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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데는 농림수산식품부가 협상을 제대로 못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비판이 집중되는 부분은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나라가 수입을 중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협상력이 부족해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런 불만은 정부가 협상 내용을 은폐했다는 의혹으로 확산됐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국제 기준과 과학적 근거에 따라 협상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우리가 먼저 협상을 끝냈을 뿐이지 현재 미국과 협상 중인 일본·대만 등도 결국 비슷한 조건을 수용할 것이란 설명이다. 김창섭 농식품부 동물방역팀장은 “지난달 22일 새로 적용될 수입위생조건을 관보와 홈페이지를 통해 모두 공개했다”며 “은폐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5일 추가로 협정문의 일부인 ‘합의 요록(agreed minutes)’을 공개했다.

◇국제 기준 대 주권 포기=지난달 18일 맺어진 한·미 쇠고기 협정의 근간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이다. OIE가 정한 ‘광우병 위험 통제국’은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추가로 발생할 수 있으나 위험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OIE가 위험 통제국이 아니라고 판단하지 않는 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나라는 수입을 금지할 수 없다. 우리뿐 아니라 일본과 캐나다도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지 않기로 협정을 맺었다.

반면 부실 협상을 주장하는 측에선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내세운다. 과학적 근거가 다소 부족해도 일정 기간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 교수는 “현재로선 최선의 과학적 준거인 OIE 기준에 따라 양국이 협상한 것은 타당했다”며 “그러나 WTO 협정상 보장된 권한을 포기한 것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30개월 이상 된 소의 수입을 허용한 것도 논란이다. 96개국이 연령 제한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지만, 주요 수입국 가운데는 우리가 가장 먼저 벽을 허물었다. 특히 이번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쇠고기의 연령 표기를 별도로 하지 않아도 된다. 미 국내법으로 걸러진다는 논리였다. 논란이 커지자 농식품부는 6일 위험물질에 대해선 연령 표기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합의 요록 공개=당초 7일 공개할 예정이던 합의 요록이 이틀 앞당겨 공개됐다. 밀실협상 비판을 의식해서다. 합의 요록에서 양국은 소의 혈액을 사용한 제품에 대한 수입 논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검역 대기 중인 미국산 쇠고기는 새로 맺은 협정에 따라 검역을 재개한다. 대신 미국은 한국을 ‘(소) 구제역 청정지역’으로 인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미국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삼계탕 수출과 관련한 현지조사를 한다.

김영훈·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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