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 탄탄한 마운드, 든든한 동문 … 챔피언 만들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2006년 초 서울 덕수고등학교 운동장. 예비 신입생 성영훈은 선배들과 함께 첫 겨울훈련을 치르고 있었다. 간결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오른팔의 궤적이 물 흐르듯 부드러워 코칭스태프의 눈길을 확 끌었다. 최재호 전 덕수고 감독은 강한 어깨와 타자로서의 재능을 높이 사 포수로 쓰려고 그를 스카우트했다. 그러나 이날 유연하면서도 빠르게 공을 뿌리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차세대 에이스로 낙점한 것이다. 이때 성영훈이 포수 마스크를 썼다면 제42회 대통령배 우승컵의 주인공은 덕수고가 아닐 수도 있었다.

◇아마 최고 투수 성영훈=성영훈은 대통령배와 함께 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교 시절 첫 출전한 전국대회가 제40회 대통령배다. 1학년이던 그는 2006년 대회 서울고 전에서 임태훈(현 두산)과 맞대결해 역전승을 일궈냈다. 당시 135㎞이던 구속이 그 해 가을 봉황대기에서 145㎞를 찍을 정도로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4개월 만에 볼 스피드를 10㎞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노력 외에도 대통령배 대회에서의 자신감이 뒷받침됐다. 성영훈의 진화는 쉼 없이 계속됐고, 지난해 말에는 최고 구속 154㎞까지 기록하며 아마 최고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달 프로야구 두산과 계약금 5억5000만원에 사인하며 올 시즌 고교생 중에서 맨 먼저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성영훈의 롤 모델은 일본 프로야구 한신의 마무리 후지카와 규지. 일본 대표 출신 후지카와 규지는 155㎞ 강속구를 뿌리며 올 시즌 11세이브로 이 부문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성영훈이 달고 있는 등번호 22번은 후지카와와 같다. 나름의 의지 표현인 셈이다. 성영훈은 “후지카와의 호쾌한 투구 스타일을 좋아한다”면서도 “그러나 선발이 목표이지 마무리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차별을 뒀다.

◇덕수고와 대통령배=1980년 창단한 덕수고 야구부는 류제국(탬파베이), 정수근(롯데), 김재걸(삼성), 이용규(KIA) 등이 거쳐간 야구 명문고다. 덕수고 교무실 앞에는 숱한 전국대회 트로피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번 대회 전까지 유일하게 대통령배 우승컵이 없었다. 준우승이 역대 최고 성적이었으니까 이번 우승으로 28년 한을 푼 셈이다. 성영훈을 앞세운 높은 마운드가 우승의 원동력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동문들의 든든한 지원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동문들은 야구발전위원회를 통해 해마다 1억∼1억5000만원을 모금해 지원하고 있다. 기량 상승의 산실인 실내연습장은 물론이고, 야간훈련을 위한 조명시설에다 웨이트 트레이닝장까지 동문들의 지원으로 건립됐다. 동문들은 대통령배 우승을 일궈낸 선수들에게 합숙소로 쓰는 생활관 전면 개보수라는 선물도 안겼다. 정윤진 감독은 “서울 시내 중학 야구선수 중 상당수가 오고 싶어하는 학교”라고 말했다. 덕수고 78회 졸업생인 정 감독은 덕수고 사상 첫 모교 출신 감독이다. 14년간 덕수고 코치로 일해오다 올해 초 사령탑에 올랐다.

정 감독은 “34명의 선수 모두가 휴대전화가 없을 정도로 훈련에만 매진할 수 있는 분위기다. 믿고 따라준 선수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며 울먹였다. 

허진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