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세계화 첨병 산업디자이너 키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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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551….
매일 아침 업무를 시작하기전 되뇌어 보는 숫자다.이는 필자가뉴욕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진흥을 위해 일할 당시 명망있는 어느 산업디자이너로부터 들은 의미심장한 숫자인데 내게는 일종의근무신조가 됐다.뜻인 즉 1천개의 제품디자인중 5백개의 시안이쓸만한게 나오고 그중 50개만 제품으로 만들어지며 최종적으로는겨우 단 1개만 성공한 상품으로 남는다는 말이다.이것은 비록 계량적인 통계치는 아니지만 산업디자인계에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분이 느끼는 체험의 통계치 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전 산업분야에 걸쳐 마케팅이 고도로 발달한 미국의 경우 기업이 어떤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가장 결정적인 권한은 컨설팅이나 설계용역을 맡은 산업디자인 전문회사에 주어져 있다.그리고 기업도 경영에 있어 산업디자인 유관단체와의 유대를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산업디자이너들은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그 요구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누구보다 먼저 간파해 제품의 방향을 결정하고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가장 큰 취약점이 마케팅에 있다고 생각했던필자는 80년대말부터 가격경쟁력 하락으로 위기에 직면한 대미(對美)수출기업들에 역으로 미국의 마케팅 전략에서 배워보자고 권유했다.그 하나가 대형 쇼핑몰에 판매 공간을 확보 해 직영 소매점포를 운영하는 방안이었다.수시로 바뀌는 소비자의 기호와 구매 심리를 제때에 파악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활용하자는의도에서였다.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이 이 제안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직영점포를 설치운영한다 하더라도 그 매장에서 소비자들의 다양한 변화를 읽고 해석해 곧바로 대안을 제시해 줄 산업디자이너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수출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근본원인은 전문적인 산업디자이너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왜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처럼 산업디자이너 인력난에 허덕이게 됐을까.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는 그동안 산업디자인에 대한 국민의 인식결여와 정책부재 때문이다.
영국의 예를 보면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산업디자인 과목을 삽입해 그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시키고 생활화하도록 교육하고 있으며,특히 전문 산업디자이너 양성기관으로 왕립대학원(RCA)까지설립해 정부예산으로 운영하고 있다.예술의 나라 프랑스도 다른 나라의 적극적인 산업디자인 진흥책에 뒤질세라 최고과정의 국립산업디자인대학원(ENSCI)을 설립하는등 선진국들중 산업디자인을중요시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이후 선진각국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필수요소로,그리고 제품설계에서부터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경영의 중심 개념으로 산업디자인을 가장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산업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산업디자인 입국의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한 우리도 무엇보다 엘리트 산업디자이너를 양성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한국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KIDP)이 국제감각과 실무능력을 갖추고 창의력을 겸비한 산업디자이너를 키워낼「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가칭)」을 세우게 된 것도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교육부는 문민정부의 「세계화」슬로건에 발맞춰 대학원 교육과 관련한 제도개선을 추진해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 설립의 토대를 다지고 있으며,예산 관련 부처에서도 각국의 권위있는 교수진확보와 첨단 실습기자재 구비에 필요한 예산을 ■ 원하는등 세계적인 수준의 「산업디자인사관학교」를 탄생시키기 위한 노력에 각계 각층이 동참하고 있다.이제는 업계도 산업디자인을 경영의 필수요소로 인식하고 적재적소에 산업디자이너를 배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 도록 끊임없이 재교육해야할 것이다.앞으로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의 전과정을 이수한 인재들이 차세대 산업디자인계의 지도자로서 우리나라의 세계화 과업에 견인차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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