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문혁 당시 군대 불륜소재로 지도자 마오쩌둥을 비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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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렌커 지음,
김태성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56쪽, 1만원

# “웨이런민푸우!”

1944년 7월 5일. 중국 산베이(陝北)에서 일어난 탄광 붕괴사고로 공산당 간부 장쓰더(張思德)가 압사한다. 사흘 뒤 열린 추모식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은 부르짖는다. “웨이런민푸우(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爲人民服務)!” 그 뒤로 웨이런민푸우는 중국 사회주의의 대표 구호로 군림한다. 문화혁명의 열기가 대륙을 달뤘던 70년대 웨이런민푸우는 하나의 테제 모양 떠받쳐진다. 지금도 중국의 공공기관엔 이 다섯 글자가 눈에 잘 띄는 곳에 모셔져 있다. 워낙 유명한 글귀다 보니 요즘엔 일종의 말장난마저 파생한 형편이다. 이를 테면 친구에게 담뱃불을 빌릴 때 중국인은 이렇게 말한다. “웨이런민푸우.”

# 『웨이런민푸우』

2005년 1월. 광둥성(廣東省) 광저우(廣州)에서 발간되는 격월간 문예지 ‘화청(花星)’ 3월호에 옌렌커(閻連科)가 장편 ‘웨이런민푸우’를 발표한다. 당국은 즉시 해당 문예지를 수거하고 정간 명령을 내린다. 소설은 출판·홍보·게재·비평·각색 행위가 일절 금지되는 이른바 ‘5금(禁)’ 조치를 당한다. 21세기 들어 중국 당국이 취한 가장 강력한 출판제한 조처다.

하나 당국의 서슬 퍼런 통제는 되레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남녀 주인공의 대화 몇 마디만 들어도 수긍되는 구석이 있다. 아래는 성실한 취사병 ‘우다왕’과 사단장의 젊은 아내 ‘류롄’의 대화 중 일부다.

“사단장님과 사단장님의 가정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37쪽)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 팻말이 식탁 위에 없으면 내가 시킬 일이 있으니 위층으로 올라오라는 뜻이란 걸 잊지 마.”(40쪽)

“어서 벗어. 인민을 위해 복무할 마음이 없는 거야?”(100쪽)

이쯤에서 짐작되는 바가 있을 게다. 그렇다. 소설은 문화혁명 당시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불륜사건을 노골적으로 다룬다. 사단장의 젊은 아내는 취사병을 유혹하고, 둘은 이내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소설은 시작하자마자 두 남녀의 관계로 좁혀지고, 이렇게 압축된 구조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성(性)에 유독 엄격한 중국 당국의 시각을 고려한다면, 소설은 마땅히 위험하고 불온하다.

그러나 소설은 차라리 이적물에 가깝다. 앞서 인용한 대로, 반세기 넘도록 위세를 떨친 마오쩌둥의 어록이 신랄하게 조롱 당한다. 옌렌커는 감히 마오쩌둥을 비웃고, 사회주의 이념에 딴죽을 건다. 소설은 성애소설로 위장한 통렬한 정치비판 소설이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옌렌커는 이 소설로 큰 돈을 벌었다. 대륙 안에서야 금지됐지만 소설은 12개 나라에서 번역·출간됐다. 하나 당국은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았다. 중국 인터넷에서도 ‘웨이런민푸우’ 원고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단다.

중국의 권위 있는 비평가 천쓰허(陳思和)는 옌렌커의 작업을 ‘괴탄(怪誕)문학’이라 이른다. 문화혁명을 공포나 반성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유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문학조류란 뜻이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을 읽는 건, 당대 중국소설의 최첨단 경향을 경험하는 일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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