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3역’ 박지성, 맨유 결승행 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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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끄는 말이었던 박지성이 혈통 좋은 명마로 변했다(Ji-sung Park went from workhorse to thoroughbred).”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이끈 박지성(27)에 대한 영국 데일리 메일의 극찬이다.

괜한 호들갑이 아니다. 박지성은 30일(한국시간) 홈구장인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 2차전에서 말 그대로 90분 동안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1차전 0-0 무승부에 이어 2차전에서 승리한 맨유는 첼시-리버풀의 또 다른 4강전 승자와 22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단판으로 우승컵을 다툰다.

◇승리의 1등 공신=이날 결승골의 주인공은 폴 스콜스. 전반 14분 상대팀 참브로타가 걷어낸 공을 아크 왼쪽에서 차단한 뒤 거침없는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그러나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는 박지성을 최고의 수훈 선수로 꼽았다. “상식을 넘어선 스태미나를 뽐냈다. 단순히 열심히 뛰는 것 이상이었다. 전반에는 골을 넣을 뻔했고, 나니가 반드시 성공시켰어야 할 빛나는 크로스를 연결했다”며 평점 9점을 줬다. 스콜스의 평점은 7점이었으며 바르셀로나의 맹공을 막아낸 수비수 퍼디낸드도 8점에 그쳤다.

전반 21분 호날두의 패스를 받아 아크 왼쪽에서 박지성이 때린 오른발 슛은 스콜스의 골 장면을 제외하고 가장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전반 41분에는 왼쪽 터치라인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로 나니에게 천금 같은 헤딩 찬스를 만들어줬다.

◇한 경기 1인3역 소화=한마디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다. 박지성은 왼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했다. 후반 21분에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겨 공격과 수비를 조율했다. 후반 32분에는 오른쪽 윙포워드로 또 이동해 종류 휘슬 때까지 뛰었다. 멀티 플레이어의 진수를 뽐내며 퍼거슨 감독의 다양한 전술 변화의 중심에 섰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은 이날도 변함이 없었다. 특히 후반 중반 이후 공격 포지션을 맡았지만 순식간에 수비라인에 가담해 에브라, 오언 하그리브스 등 동료와 호흡을 맞추며 바르셀로나의 메시와 앙리를 꽁꽁 묶었다. 영국 언론은 그를 ‘끝없이 바르셀로나를 괴롭힌 방해자’(가디언), ‘믿기지 않는 에너지와 열정’(데일리 스타)이라는 등의 표현을 동원하며 박지성의 플레이를 극찬했다. 현지 중계진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그가 이 경기에서 질주한 거리는 11.962km나 됐다. 팀 평균 11.022km보다 940m를 더 달렸다.

◇승리의 보증수표=박지성은 2005~2006시즌 종반부터 지금까지 선발로 출전한 25경기에서 23승2무라는 놀라운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헌신적인 팀 플레이가 성적으로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퍼거슨 감독은 AS 로마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 2차전과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 1, 2차전 등 중요한 네 경기에서 연속으로 박지성을 풀타임 출전시켰다. 호날두, 루니, 긱스 등 주전들에게 휴식이 필요한 시점에 박지성을 선발로 활용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기용 방식이다. 박지성이 이번 챔스리그 결승전에서 뛴다면, 그리고 우승컵까지 집어든다면 모두 아시아 선수로는 첫 번째 기록이 된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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