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임형 투자' 상품, 계좌 수천개에 직원은 10여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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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대1 맞춤식 자산관리 시대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일임형 랩어카운트가 겉돌고 있다.

지난해 10월 첫선을 보인 랩어카운트는 삼성증권 8500억원, 대우증권 5200억원 등 약 1조7000억원 가량의 자금이 몰리며 새로운 투자처로 떠올랐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가입금액 제한을 낮추는 등 상품판매에만 열을 올리면서 종합자산관리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금융상품’ 판매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소리가 나온다.

◇무늬만 맞춤형=외형면에서는 급성장했지만 전문운용역이 고객의 투자성향을 정밀 분석해 주식.채권.부동산 등을 한꺼번에 관리해 주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랩어카운트는 결제만 계좌별로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실제 운영은 공격형.안정형 등 본사가 짜놓은 몇개의 상품에 투자하는 형태로 관리되기 때문에 기존 주식형 펀드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객의 투자목표.재무상황 등을 파악해야 하는 지점 자산관리사(FP)들의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데다, 투자종목과 매매시점을 지점이 아닌 본사에서 책임지면서 고객의 투자성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본사에서 10명 내외의 소수 인력으로 수천개의 계좌를 운용하다 보니 랩어카운트의 최대 장점인 맞춤형 서비스는 거의 불가능 하다"며 "현재는 주가가 오르고 있기 때문에 고객의 불만이 적지만 내림세로 돌아서면 고객과의 마찰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증권사에서 최소가입금액 제한을 없애는 등 대중화 전략을 펼치는 것도 고품격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본래의 취지를 탈색시키고 고객수 늘리기 경쟁만 부추기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랩어카운트 가입 고객의 80% 가량은 투자 금액이 1억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랩어카운트 실적 부담 때문에 만기가 돌아온 펀드 고객들에게 펀드 대신 랩상품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며 "고객의 입장에서는 주식형 펀드와 차이가 없는 데도 30~50% 정도 높은 수수료를 떼고 있다"고 말했다.

◇업그레이드 경쟁 가열=각 증권사들은 이런 점을 보완해 '맞춤형'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굿모닝신한증권은 고객의 투자성향을 효율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상품유형을 10여개로 늘릴 예정이다.

대한투자증권은 VIP 개인과 기관.법인 등을 대상으로 본사에서 직접 자산을 운용하는 방안을 새로 마련하기로 했다.

대우증권은 자산운용 실적이 우수한 사내 FP를 1년 이상 조련해 현물뿐만 아니라 파생상품 운용까지 가능한 전문운용역(Money Manager)으로 키울 계획이다. 예상 교육비는 1인당 5억원 수준. 이와 함께 고객 수익률을 토대로 랩 운용역들의 운용실적 순위도 발표하기로 했다.

대우증권 이제성 자산관리영업본부장은 "랩어카운트가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으로 부상하면서 각 사마다 차별화 서비스를 마련하는 등 사활을 걸고 있다"며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시행됨에 따라 랩어카운트의 운용을 투자자문사나 자산운용사에 맡기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수익률을 높이고 고객 입맛에 맞는 다양한 상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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