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yle] 버버리 수석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베일리 “나의 패션은 혁명이 아닌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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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자락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크리스토퍼 베일리. 그는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며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했다. [사진=박종근 기자]

24년 전의 일이다. 영국 북동부 요크셔 지방에 크리스토퍼 베일리라는 열세 살 소년이 살고 있었다. 소년은 시골 고향에서 처음 ‘버버리’를 만났다. ‘점블 세일’이라는 벼룩시장에서 트렌치 코트를 처음 샀다. 너무 좋아서 몇 벌이나 구입했다. 그는 당시의 ‘감격’을 지금도 기억한다. “버버리 것이었다. 시골 출신인 나는 그때 그걸 입으면 런던 사람처럼 멋져 보일 것 같았다.”

소년은 요즘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그것도 영국 태생의 세계적 명품 브랜드 버버리의 수석 디자이너다. 우연치곤 필연 같다.

패션계의 젊은 스타 크리스토퍼 베일리(37). 최근 서울을 방문한 그를 서울 남산 자락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그는 이탈리아 명품 구찌의 스타 디자이너 톰 포드와 함께 일하다 2001년 버버리에 스카우트됐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 버버리 브랜드의 나이는 145세였다.

#전통을 진화시켜라

버버리는 젊은 디자이너에게 ‘전통의 브랜드를 혁신하라’는 임무를 줬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바바리’로 부르는 트렌치 코트, 베이지색 바탕에 검은색과 붉은색이 교차된 체크 무늬로 각인된 버버리의 ‘개혁’을 주문했다. 150년 가까운 버버리의 전통에 ‘플러스 알파’를 요구했다.

전례가 없던 건 아니다. 한때 그의 상사였던 톰 포드는 1990년대 낡고 오래된 이미지의 구찌를 젊고 섹시한 브랜드로 180도 바꿔놓아 패션계에 돌풍을 일으켰었다. 그와 비슷한 과제가 베일리에게 떨어진 것이다.

베일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영입 직후 ‘버버리 프로섬’을 내놓았다. 버버리의 트렌치 코트는 더 이상 묵직하고 낡은, ‘아버지 바바리’ 느낌이 아니었다. 트렌치 코트의 허리선이 한결 잘록해져 실루엣이 살아났고, 코트의 길이·색상·무늬도 다양해졌다. 패션쇼의 런웨이에도 첨단 유행에 민감한, 훤칠한 소년 모델들을 세웠다. 버버리 수트 역시 트렌드를 따라 과거와 달리 훨씬 날렵하게 디자인했다.

그럼에도 베일리는 전통에 방점을 찍었다. ‘창조’가 아닌 ‘진화’를 강조했다. ‘무(無)’에서 ‘유(有)’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트렌치 코트는 너무나 아름다운 옷이다. 버버리의 모든 컬렉션은 트렌치 코트에서 시작된다. 개별 시즌의 컨셉트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버버리가 가졌던 유산과 지금껏 함께 일해온 사람들, 문화와 브랜드, 나 자신, 창업자인 토머스 버버리에 대한 총체적인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것이 미래의 버버리를 이끌어 갈 발판이자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프로섬의 바탕이다.”

그는 첫 패션쇼도 버버리의 고향인 영국 런던이 아니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었다. 새로운 버버리, 달라진 버버리를 적극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버버리 프로섬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선 베일리가 만든 ‘버버리 프로섬’ 옷을 예약해도 구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보그’ ‘엘르’ 등 패션 잡지들은 “젊어진 버버리는 베일리 덕분”이라며 새 디자이너의 성공을 축하했다. 그가 프로섬을 내놓은 지 8년째. 지금도 인기는 여전하다. 그는 어떤 생각에서 전통의 브랜드를 변화시켰을까.

“2001년 선보인 ‘버버리 프로섬’은 혁명이 아니다. ‘프로섬’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의 라틴어다. 나는 한번도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았다. 진화라고 부르고 싶다. 혁명과 진화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모든 것을 한번에 뒤엎으려 한 것이 아니고 차근차근 바꾸길 원했다.”

오랜 전통이 짐이 되진 않았을까. “전통은 오히려 덤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버버리를 잘 알고 있는 데다 150년 넘게 만들어 왔던 옷이 있지 않나. 어떤 디자인이 어떻게 발전돼 왔는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것을 뒤적여 보면서 오늘에 맞는 새 디자인을 발견해 낼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

새로운 라인은 그의 아이디어였을까. “물론 회사도 원했고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버버리의 전통을 더 진화시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옛 버버리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고 재해석해 내놓은 프로섬이 된 것이다. 내 모든 컬렉션에서 여전히 트렌치 코트가 빠지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평범하게 즐기고 생각하라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디자인한 올 봄·여름용 여성복. [버버리 프로섬 제공]

베일리는 쾌속 가도를 달려왔다. 또래의 디자이너들이 막 실력을 쌓을 나이에 세계적 명품을 떠맡았다. “‘그때 정말 어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시절엔 어느 회사를 가도 워낙 어린 편이었다. 그전에도 파리·뉴욕·밀라노를 돌아다니며 일을 했기 때문에 그냥 고향에 돌아간다는 느낌 정도였다.”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미국 뉴욕에서 도나 카란과 함께 일하고 다시 이탈리아로 가서 구찌의 톰 포드랑 일했다. 영국의 버버리는 새로워지고 싶었고, 그래서 날 택한 것 같다. 게다가 난 영국인 아닌가.”(웃음)

나이가 젊다는 게 마냥 장점은 아닐 것이다. “나 같은 위치에 있다 보면 화려한 일상, 큰돈 같은 것에 둘러싸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현실감각을 잃기 쉽다. 그래서 자주 나 자신에게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라’고 한다. 멈춰서 지금 내 옆에 아름다운 벚꽃이 피었는지, 향긋한 냄새가 나는지 똑바로 보고 그것을 즐기라고 말이다.”

화려한 면면과 달리 그는 의외로 소박했다. “가족, 가까운 친구와 함께하려고 2~3주에 한번은 고향집이 있는 요크셔에 간다. 평범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즐기고 느끼는 게 내 디자인의 영감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팝 음악을 듣고 시골 풍경을 즐기고 친구와 수다 떠는 것 모두 말이다.”

그는 365일 분주하다. 1년에 네 번의 패션쇼를 열고, 한국에만 70여 개, 전 세계 500여
개 매장의 디자인과 컨셉트를 결정해야 한다. 새로운 디자인을 기다리는 팬들의 기대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그는 한마디로 “행복하다”고 했다. 열세 살 소년 시절 버버리의 추억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와 버버리의 ‘동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정상급 디자이너들은 자기 이름을 건 브랜드를 내고 활동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주위에서 늘 하는 질문이다. 내 이름을 건 브랜드를 언제 낼 것이냐를 묻는데 난 정말 관심이 없다. 버버리는 내 자식과 같다. 어떻게 자식을 버리는가. ”  

글=강승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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