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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모, 어떤 사람이 무슨 이유로 택하는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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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오늘날 대리 출산을 ‘제리 스프링어 쇼’에서나 볼 수 있는 엉뚱한 행동으로 보는 시각은 줄어드는 추세다. 오히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불임 부부가 자식을 얻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렇다 해도 미국 문화에는 여전히 대리모를 어수룩한 시골뜨기 혹은 돈밖에 모르는 부도덕한 기회주의자로 보는 고정관념이 남아 있다. 심지어 대중문화에서도 대리모를 풍자적인 시각으로 묘사한다.

곧 개봉될 영화 ‘베이비 마마(Baby Mama)’에서 티나 페이가 연기한 독신의 여성 기업인은 의사로부터 불임 판정을 받는다. 그녀는 노동자 계층 여성인 에이미 포엘러를 대리모로 고용한다. 페이는 건강식품 연쇄점의 중역으로 세상 물정에 밝고 영리하며 돈이 많다. 포엘러는 사기성이 있고 손쉬운 돈벌이를 찾는 실업자다.

페이가 자신의 대리모를 “백인 쓰레기”라고 언급하는 대목은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한 부분이다. 이 영화에 영향을 미친 고정관념에 대해 대리모인 지나 스캔런(40)은 “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스캔런은 세 아이를 둔 기혼여성으로 피츠버그에 살고 있다.

그녀는 또 미술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18개월 전 뉴저지주의 남성 동성애자 커플에게 쌍둥이 딸들을 낳아줬다. 이 커플(한 명은 대학교수, 또 한 명은 공인회계사)이 스캔런을 대리모로 선택한 이유는 그녀가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한 남성의 아내로서 “정서적으로 안정됐기 때문”이었다.

<뉴스위크 828호>

대개 20대 여성인 난자 기증자들과 달리 건강한 여성은 40세에도 대리모로 활동할 수 있다. 3주 전 스캔런은 새로운 의뢰인들을 위해 배아 이식술을 받고 다시 임신한 상태다. 그녀는 “가난하거나 절박한 여성들은 대리 출산 알선업체들이 요구하는 대리모 자격 요건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리모들이 오로지 돈 때문에 대리 출산을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스캔런은 매일 24시간, 매주 7일씩 뱃속에 아기를 담고 사는 것보다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반박한다. 게다가 대다수 직업에는 몇 주 동안 헛구역질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싶어도 몇 달간 금주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

스캔런은 “대리 출산으로 받는 돈을 시간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에 가까운 수준일 것”이라면서 “그 험담꾼들이 대리모를 만나보기라도 했는지 모르겠다”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대리모를 만나본들 그런 실상을 어떻게 알겠는가?

사실 대리모의 세계에 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취재팀은 미국 각지에서 대리모로 활동 중이거나 활동했던 여성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고정관념과는 다른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캘리포니아주 무리에타의 독신모, 메릴랜드주 글렌 버니의 군인 배우자, 댈러스의 중소기업체 소유자 등 광범한 부류의 여성들이 대리모로 활동한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경이로움과 삶에 대한 긍정부터 가슴이 미어질 듯한 슬픔까지 다양하다.

스캔런 같은 여성은 자신이 대리 출산한 쌍둥이들의 대모로 관계를 유지한다. 어떤 대리모는 자신이 한때 몸속에 지녔던 아이와의 접촉이 끊어져 지금도 속앓이를 한다. 먹고 마시는 문제에 간섭 받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대리모가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친자식 임신 때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대리모도 있다.

대리 출산에 나선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중상류층 출신의 한 대리모는 어린 시절에 친척 중 한 명이 불임 문제로 고통 받는 것을 보며 자신이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게 됐다. 아이다호주 노동자 계층 출신의 한 대리모는 예전엔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들이 대리 출산으로 버는 돈 덕분에 가능해졌다.

예컨대 6000달러를 들여 디즈니 월드로 가족 나들이를 가는 것 따위다. 그러나 동기는 이처럼 다양해도, 모든 대리모가 동의하는 점이 하나 있다. 처음으로 아기 혹은 아기들(IVF에선 쌍둥이들이 많이 태어난다)을 품에 안고 감격하는 의뢰인들의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는 점이다.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IVF 과정, 입덧, 장기간의 침대 요양, 보기 흉한 임신선 같은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장점들이다. 제니퍼 캔터는 “대리모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나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다만 대리 출산은 내가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며 의뢰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런 권능감과 자존감은 대리모들이 느끼는 가장 큰 보람에 속한다. 위스콘신주 워소에 사는 앰버 보어스마(30)는 “‘내 인생에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일을 다른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금발에 사교적인 성격의 보어스마는 현재 임신 6개월째다.

자궁적출술을 받아 아기를 갖지 못하는 동부 해안 지역의 어느 부부를 위해 쌍둥이를 임신 중이다. 남편이 제약회사 직원인 보어스마는 딸(6)과 아들(4)을 둔 전업주부다. 대학 시절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중요한 분야에서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도 인생을 무의미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뭔가를 하고 싶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돈 문제도 있다. 남편이 군인인 거니샤 마이어스(24)는 샌디에이고 지역의 벼룩신문 을 훑어보며 일감을 찾고 있었다. ‘대리모 구함! 최대 2만 달러 소득!’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두 아이를 둔 전업주부인 마이어스는 집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방사선 기술자로 일했다)을 그만둔 이래 잃어버렸던 목적의식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이어스는 해군 3등 하사관인 남편 팀을 따라 2004년 애리조나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그때부터 마이어스는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오고 다른 사람을 돕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임신도 하고 싶었다. 아기가 들어 있는 복부를 어루만질 때의 느낌, 그리고 “(임신에 수반하는) 왕성한 호르몬 분비”에서 오는 천연의 도취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가을 남편의 근무지인 32번가 해군기지 부근에 있는 대리모 알선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할머니는 마이어스의 결정을 못마땅해 했다.

마이어스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집안에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삼촌은 심지어 역겹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에게 그들의 힘만으론 결코 얻을 수 없는 것, 즉 가족을 만들어 주고 있다.”

마이어스처럼 대리모로 활동하는 군인 아내들은 대부분 28세 이전에 가족 구성을 완료한 전업주부들이다.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의 IVF 병원들과 대리모 알선업체들은 고객의 50%가 군인 아내라고 한다. “우리처럼 군대에 속한 사람들은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국가를 위해 싸운다든지, 목숨을 건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제니퍼 핸슨(변호사 보조원·25)은 말했다. 제니퍼와 그녀의 남편 체이스 핸슨 육군 하사는 네브래스카주 링컨에 살며 두 명의 어린아이를 키운다. 체이스는 지난 5년 중 2년을 이라크에 파견돼 근무했다.

제니퍼는 “군인과 결혼해 살다 보니 그런 가치관이 몸에 밴 것 같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나는 모험을 하고 있다. 남편만큼 위험한 일은 아니지만 남을 돕기 위해 내 생명과 몸을 걸었다.” 대리 출산 알선업체들은 그런 여성들을 원한다.

그래서 샌디에이고의 캠프 펜들턴 같은 군사기지 주변에 있는 군인 가족 주택단지의 우편함에 광고지를 넣는다. 밀리터리 타임스와 밀리터리 스파우스 같은 군 간행물에도 광고를 싣는다. 대리모 알선업체들은 요즘엔 오히려 이런 간행물의 영업 책임자들이 광고를 실어 달라고 접촉해 온다고 밝혔다.

대리모로 나선 군인 아내들은 한 차례 임신·출산으로 남편의 연봉 기본급(신병의 경우 1만6080~2만8900달러)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뉴저지주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멜리사 브리스먼은 “군인 아내들은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자주 이사해야 하기 때문에 한 군데 직장에 오래 있지 못한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뭔가 긍정적인 일을 하며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대리 임신과 출산에는 1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남편이 전근하기 전까지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뉴스위크 8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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