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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씨받이’ 대리모 미국서 때 아닌 열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뉴스위크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사는 외과 간호사 제니퍼 캔터(34)는 임신을 좋아한다. 아이를 더 갖고 싶어서가 아니다(캔터는 달리아라는 이름의 여덟 살짜리 딸이 있으며, 아이를 더 가질 계획은 없다). 자신의 심장 바로 밑 뱃속에서 한 인간을 키우는 체험을 좋아할 뿐이다.

어린 시절에도 그런 생각만 하면 마냥 즐거웠다. 11세 땐 두 주간의 방학 기간 내내 셔츠 속에 베개를 넣고 임신부를 흉내 내며 살다시피 했다. 캔터의 체격은 임신하기에 완벽하다. 183㎝의 키에 건강하고 날씬하면서도 골반은 넓다. 3주 전 캔터는 헌츠빌의 병원 분만실에 있었다.

임신 8개월째인 그녀의 배는 남자 쌍둥이들(각각 2.7kg) 때문에 크게 불러 있었다. 분만실에는 케리 스미스와 그의 아내 리사도 있었다. 리사는 캔터의 팽팽해진 복부 속으로 만져지는 작은 생명체를 쓰다듬었다.

“그건 팔꿈치예요.” 자신의 자궁 속에서 아기들이 어떻게 누워있는지를 아는 캔터가 말했다. “발은 여기 있네.” 리사는 남편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기야 리사는 그 쌍둥이들의 엄마다.

대리 출산은 이처럼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랑의 행위지만 금전적 거래 행위이기도 하다. 리사는 20세에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뒤로 임신을 못한다. 케리와 리사가 대리모 출산으로 얻은 이득은 확실하다. 지난 3월 20일 이들 부부는 캔터의 제왕절개 수술로 약 3㎏의 건강한 사내아이 이선과 조너선 둘을 얻었다.

캔터는 무엇을 얻었을까? 물론 돈이다. 스미스 부부는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대체로 미국의 대리모들은 임신과 출산을 대신해 주는 대가로 2만~2만5000달러를 받는다. 캔터는 자신의 임신에 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짓궂은 설명을 하며 재미있어 했다.

“아, 이 쌍둥이는 내 아이들이 아니에요.” 그러면 늘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그 애들 아버지하고 섹스를 했나요?”(리사의 난자는 시험관에서 케리의 정자와 수정된 지 5일 뒤 캔터의 자궁 속에 이식됐다.)

하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고생하며 자기 몸 안에서 키워온 아이를 분만하자마자 남에게 넘겨주는 여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대리모 출산은 모성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기본 인식을 뒤흔들 만하다. 또 어머니와 자식 간의 끊을 수 없는 유대감은 임신 과정에서 나온다는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많은 보수적 기독교인은 대리 출산이 생명의 경이로움을 훼손한다고 성토한다. 극좌 여권운동가들은 자기 몸을 파는 행위로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대리모들을 매춘부에 비유한다. 일부 의료 윤리학자는 대리모 알선 행위를 “아기 중개업”으로 규정한다.

지나치게 외모를 중시하는 천박한 뉴요커들이 복부에 임신선이 생기는 것을 피하려고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는다는 소문도 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대리 출산을 금지한다. 미국에서는 뉴욕·뉴저지·미시간을 포함한 12개 주가 대리 출산 계약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5년간 텍사스·일리노이·유타·플로리다 등 4개 주가 대리 출산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네소타주는 합법화 문제를 검토 중이다. 펜실베이니아와 매사추세츠, 특히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10여 개 주는 대리 출산을 허용한다.

불임 부부를 위해 아이를 낳아주는 대리모들은 더 느는 추세다. 대리 출산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과학기술이 발달한 덕분이다. 본 기사를 준비하는 동안 취재진은 대리모의 상당수가 군인을 남편으로 둔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여성들은 가계소득을 늘리려고 대리모 활동에 나선다.

일부는 남편이 해외 근무 중이다. 몇몇 대리모 알선업체의 자료에 따르면,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 이후 대리모로 나선 군인 아내 수가 늘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국에서 약 1000건의 대리 출산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한다.

대리 출산 현황을 추적하는 유일한 단체인 생식보조기술협회(SART)는 2006년에 약 260건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3년 새 30%가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실제로는 훨씬 더 많다.

뉴스위크가 취재한 알선업체 중 5개 업소에서만 2007년에 400건의 대리 출산을 알선했다. 이처럼 수치가 들쭉날쭉한 이유는 대리 출산 병원(미국 전역에 수십 군데가 있다)의 최소한 15%가 시술 건수를 SART에 통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선업체를 거치지 않고 개인적 합의로 이뤄진 대리 출산은 통계에 안 잡힌다.

또 대리 출산 의뢰인이 난자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예컨대 의뢰인 부부가 남성 동성애자들인 경우)의 임신도 계산에 넣지 않는다. 한편 의료비와 법률 비용을 포함해 의뢰인 부부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4만~12만 달러나 된다. 그래도 유자격 대리모에 대한 수요는 공급을 훨씬 초과한다.

대리모 출산이 느는 또 다른 이유는 기술 발달로 안전성과 성공률이 높아진 점이다. 버지니아주의 제네틱스 & IVF 인스티튜트 같은 병원은 현재 70~90%의 임신 성공률을 자랑한다. 약 10년 전만 해도 성공률은 40%였다. 이 병원은 캔터와 스미스 부부가 시험관 수정(IVF) 절차를 밟았던 곳이다.

과거엔 배양 접시 속에 난자 한 개와 정자 수천 개를 집어넣고 수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요즘의 발생학자들은 정자 한 개를 직접 난자 속에 주입한다. 또 대다수의 시술병원은 수정된 배아를 대리모 자궁 속에 이식하기 전에 배아의 유전질환 여부를 검사한다.

시험관 아기 시술 방식이 혁명적으로 변한 것이다. 샌디에이고 소재 라호야 IVF 병원의 실험실장인 릭 로스는 이런 기술 발전 덕분에 “IVF 실패율이 85%나 줄었다”고 말했다.

IVF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부터였다. 그러나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위해 임신과 출산을 대신한다는 개념은 인류 문명만큼이나 오래됐다. 대리 출산 개념은 기원전 1800년께의 함무라비 법전에 등장했고 구약성서에도 여러 번 나타난다.

창세기 16장을 보면 불임 여성인 사라가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과 동침시켜 자신들의 후계자를 낳게 한다. 또 야곱은 자신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의 하녀들을 통해 자식들을 얻고 두 아내는 그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운다.

예수의 탄생도 일종의 대리 출산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선 변호사 대신 천사가 중개인이었고, 대리모(마리아)가 의뢰인(성령)의 아이를 직접 키웠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가장 주목 받았던 대리 출산이 법률적,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른바 ‘베이비 M’ 사건이다. 1986년 29세였던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는 어느 불임 부부와 대리모 계약을 맺고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 아이의 생물학적 어머니이기도 했던 화이트헤드는 출산 후 태도를 바꿔 자신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주장했다.

2년에 걸친 양육권 소송이 벌어졌다. 재판 결과 화이트헤드는 양육권을 얻지 못했고 대신 방문권만 인정 받았다. 그 사건 이후 대리모 계약에선 대리모가 난자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게 일반화됐다.

<뉴스위크 8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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