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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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꽃의 옛말은 「곶」입니다.「고지」라고도 했지요.꽃은 꺾어 항아리나 머리에 꽂아 장식하는 것이어서 이런 낱말로 불리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반도」나 「갑(岬)」도 「곶」「고지」였어요.꽂는 물건처럼 뾰족하게 생겼다 해서 그렇게 불린 것같아요.동시에 「남근」과 「성행위」도 가리켰어요.
그러니까 겉으로는 「꽃」을 읊으면서 속으로는 「반도」나 「성행위」를 표현하는 이중가(二重歌)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언어의 유희.고도의 지적(知的)인 놀이를 우리 조상들은 즐긴 셈입니다.』 『김삿갓도 그런 수법으로 시를 읊었었지요?』 서여사의 말에 정여사가 화답했다.
영어로도 반도와 남성 성기는 통하는 낱말이다.페닌술라와 페니스….그러나 꽃과 성행위가 한 낱말인 줄은 몰랐다.
아리영은 미스터 조 생각을 했다.
뉴델리의 불의 축제날 밤 브갬베리아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 준 사람.그러고나서 아리영의 처녀림 속으로 들어온 남자.그는 꽃과 성행위가 한 낱말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또 제주도의 비자림에서 달맞이꽃을 머리에 꽂아 준 나선생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들꽃을 사랑하는 남편은 들판이나 산길을 가다가도 야생화를 보면 정성껏 캐다 마당에 옮겨심곤 했다.그야말로 「곶」을 「곶듯」부지런히 모으고 또 모았다.그 집념의 바닥에 행여 섹스 콤플렉스같은 것은 없었을까.
남편의 입장에서 남편의 섹스를 생각해보기는 처음이다.아리영은그런 자신에게 언뜻 놀라움을 느꼈다.
『일본 본 섬인 본주(本州)를 지도에서 보면 동해 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큰 반도가 있습니다.요즘 이름은 「노토(能登.のと)반도」지만 고대엔 「고시(こし)」라 불렸습니다.반도란 뜻의 우리 옛말 「고지」가 일본에선 「고시」로 변한 것 입니다.일본사람들은 「월(越)」이란 한자로 이 「고시」를 표기했습니다.이한자의 새김이 「고시」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중세 이후엔 이 반도의 앞쪽인 서편을 「월전(越前)」,반도의 뒤쪽을 「월후(越後)」,반도 그 자체는 「월중(越中)」이라 이름지어 지방명으로 삼았습니다.아시다시피 일본식 발음으로는 「에치젠(越前.えちぜん)」「에치고(越後.えち ご)」「엣츄(越中.えっちゅう)」지요.재미있는 것은 일본인들 자신은 이 고장 이름이 어째서 이렇게 불리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어가 우리 옛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데 눈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서여사가 이끌어가는 저녁식사 분위기는 흥겹고도 무게가 있었다.그녀가 돋보였다.그러나 아버지는 서여사보다 정여사에게 더 끌리는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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