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고려장>1.서울난곡.당고개 홀로 노인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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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 선진국 대열에 접어든 한국의 수도 서울.현대화의 각종 물결이 넘실거리는 이면엔 상상도 못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노인들이 집단으로주거하고 있는「현대판 고려장(高麗葬)마을」이 엄 연히 존재하고있다.사회가 고령화되면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재개발지역 판자촌에 모여 외로움에 시들어가고 있다.조상의 덕을 추념하고 수확의 풍요로움에 감사하는 추석을 맞아 이들의 절망감은한층 더하다.이들의 비참한 생활상 을 中央日報 특별취재반이 집중조명했다.
[편집자註] 서울노원구상계4동 산동네 속칭 「당고개 판자촌」.지난달 20일 1평 남짓한 방안에서 金모(85)노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누워있었다.
金노인은 부근 상계5동에서 전세보증금 3백50만원에 살던중 집주인인 임철환(任喆煥.37.개사육업)씨에 의해 지난 5월2일이곳에 버려졌다.
집주인 任씨는 金노인으로부터 빌린 8백여만원과 전세보증금을 떼먹기 위해 월세 5만원의 사글세 방을 얻어 강제로 이사시킨 것이다. 任씨는 경기도남양주시화접리 개사육 비닐하우스로 金노인을 끌고가 1주일동안 개와 함께 사육장에 감금하기도 했다.
金노인에게는 엄연히 중소건설회사 사장인 아들(54)이 있다.
하지만 4년전 노인에게 치매증세가 시작되면서 가족불화가 이어졌고 이를 참지못한 金노인이 전세를 얻어나온 것이다.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에서 30~40도의 가파른 언덕길로 오 르다보면 3백~4백가구의 무허가 판자촌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이 판자촌에서 가족에게 버림받거나 자식과의 불화로 흘러들어와혼자 사는 노인은 1백여명.
마을 한복판 李모(75)노인이 「사는 공간」은 한평반크기로 한사람이 똑바로 누우면 꽉찰 정도의 방 하나와 간이부엌이 전부다.그는 보통 아침은 라면,점심은 초코파이,저녁은 과자.빵 부스러기로 때운다.동사무소에서 약간의 쌀을 대주지만 끓여먹을 기운이 없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그래도 생활보조비조로 월 7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李씨처럼 엄연히 자식이 있는 상당수 노인들은 한달에10여만원을 벌기위해 아침부터 취로사업을 나가야 한다.그나마 병든 노인들은 병원에도 못가고 진통제로 통증을 달래는 것이 하루 일과다.
당고개에 노인들이 많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5~6년전부터.다른 곳에서 사글세도 살지 못하는 노인들이 이곳으로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는게 관할 공무원의 얘기다.
서울관악구신림7동 난곡지역도 1백20여명의 노인들이 혼자사는「홀로노인村」이다.3평짜리 방 한칸에서 사는 金모(76)노인도30년전 아내를 잃고 강원도 속초의 큰 아들집에서 2년간 같이생활했으나 식구들의 따돌림에 반강제로 집을 나왔다.
지난 20여년동안 18번이나 이사를 다니고 있다는 金씨는 얼마전 난곡지역으로 들어왔다.한달전 길에서 넘어져 뒤통수가 터지고 눈주위가 몽우리져 거동조차 못하게 돼 대기업 과장인 아들집에 전화를 했으나 『왜 자꾸만 전화하느냐』는 말만 듣고 눈물을머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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