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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도사’ 초등생들 글씨는 왕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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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익숙한 아이들이 글씨 쓰기를 외면하고 있다. 글씨를 잘 쓰려면 연필은 중지로 받치고 검지와 엄지 끝부분으로 눌러 잡아야 한다<左>. 나머지는 잘못된 자세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신초등학교 1학년 3반 교실에서 17일 담임인 김지영 교사가 학생들에게 연필 잡는 법과 바르게 글 쓰는 법을 알려 주고 있다. [사진=민동기 기자]

서울 K초등학교 2학년 박상주(가명)군은 얼마 전 짝꿍에게 생일 축하 카드를 건넸다가 망신을 당했다. 카드를 받은 여자친구가 “글씨가 엉망이어서 뭐라고 썼는지 읽을 수가 없다”며 돌려준 것이다. 박군은 연필을 가운뎃손가락과 약지 사이에 끼우고 글씨를 쓴다. 연필 잡는 자세가 불안하다 보니 글씨가 삐뚤삐뚤하고 명확하지 않게 쓰는 것이다. 박군의 담임교사는 “한글을 유치원 이전에 깨치는 아이는 많지만 글씨체는 엉망”이라며 “어린이들이 컴퓨터나 휴대전화 문자 쓰기를 즐겨 해 전반적으로 글쓰기 훈련이 안 돼 있다”고 말했다.

본지가 21일 K초등학교 2학년 2개 반 학생 91명을 대상으로 연필 잡기 습관을 조사한 결과 불과 16명만이 집게손가락과 엄지로 잡고 중지로 연필을 받치는 올바른 습관을 갖고 있었다. 나머지 학생은 세 손가락으로 연필을 잡는 등 제멋대로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바둑판 모양의 글자 칸에 똑바로 글을 써 넣지 못하기도 했다. 인근 H초등학교 2학년 학생 92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31명이 연필을 올바로 잡지 못했다.

어린 학생의 글씨체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올바른 글쓰기 지도가 부족한 데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친숙한 아이들의 글쓰기 양도 적기 때문이다. 서울교대 황정현(국어교육과) 교수는 “초등학생의 부모들은 대부분 30대의 컴퓨터 세대”라며 “부모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글쓰기를 싫어하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 도봉구 한신초등학교는 1968년 개교 이래 40년째 학생들에게 올바른 글쓰기 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글씨체 교육을 시키면 얼마든지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한신초교의 글쓰기 교육=17일 오전 11시 한신초교 1학년 3반 교실. 담임 김지영 교사의 ‘쓰기’ 수업이 시작됐다. “자, 등을 꼿꼿이 세우세요. 손에 힘을 주고 둘째·첫째 손가락으로 연필을 누르고 가운뎃손가락으로 받쳐 보세요.”

수업을 받던 김모(8)양은 “너무 힘들다”며 연필을 놓았다. 김양은 “유치원에서 한번도 배운 적이 없다”며 “컴퓨터로 쓰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김 교사는 “애들이 힘들어 하지만 한두 달 연습시키면 익숙해진다”며 “자세가 올바르면 글씨체도 예뻐진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1, 2학년뿐 아니라 전교생에게 ‘한신노트’라는 특별한 공책을 쓰도록 하고 있다. 한신노트는 학년별로 모양이 다르다. 1학년은 가로·세로 2㎝ 크기 네모 칸에 한 글자를 쓰는데 한 칸을 4등분해 글자 자모의 위치를 정확히 가르친다. 저학년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칸이 작아지고, 고학년부터 줄공책을 쓴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1년 동안 일기·필기 등으로 채운 한신노트를 학년 말에 책으로 만들어 나눠준다. 자신의 글씨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매년 9월에는 예쁜 글쓰기와 서예대회를 열어 우수작을 교내에 전시한다. 그 덕분에 이 학교에서 연필 잡는 자세가 바르지 못한 학생은 1학년은 128명 중 21명, 2학년은 128명 중 13명에 불과하다.

황병무 교장은 “글쓰기가 두뇌 개발은 물론 인성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과잉행동장애를 보이는 학생들에게 붓글씨를 가르치면 일탈 행동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학부모 최은주(39)씨는 “유치원에서 한글을 뗀 아이의 글씨체가 너무 나빠 걱정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정성스럽게 글씨를 쓰고 집중력도 좋아졌다”고 했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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