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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단독주택에 집주인이 40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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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아파트 입주권을 노린 극심한 ‘지분 쪼개기’ 때문에 1조원대의 복합단지 개발사업이 좌초 위기를 맞았다.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인 ‘지분’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바람에 사업을 추진하던 업체 측에서 포기한 것이다.

SK건설은 인천시 남구 용현·학익 2-1구역에서 추진해 온 도시개발 사업을 중단하기로 하고 인천 남구청에 사업제안서 철회를 요청키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사업은 SK건설 소유의 땅 35만㎡와 인근 노후 주택지 등을 합친 총 42만㎡에 3300여 가구의 아파트와 상업시설을 짓는 것으로, 사업비가 총 1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SK건설이 2006년 10월 ㈜SK로부터 땅을 매입한 뒤 사업제안서를 준비하기 시작한 지난해 2월 지분 쪼개기가 시작됐다. 작은 공유지분만 갖고 있어도 아파트가 배정될 수 있는 점을 노리고 일부 투기세력까지 가세해 지분을 쪼개 가면서 토지 소유자를 늘린 것. 당초 250명이던 토지 소유자가 지난해 10월 566명으로 두 배로 늘었고, 최근 1500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사업예정지 내 82㎡짜리 단독주택 한 곳의 집주인이 400여 명에 달하기도 한다. 주인 한 사람당 보유 면적이 평균 0.2㎡에 불과한 것이다.

SK건설은 새로 지을 아파트 중 주민 몫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사업성 악화를 우려했다. 토지 소유자들에게 우선 분양해야 하는 가구수가 늘어나는 만큼 일반분양분 예상치가 3000가구가량에서 1800가구 미만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일반분양분 분양가는 주변 시세와 비슷하게 책정할 수 있지만, 주민 몫의 분양가는 원가 수준이어서 업체 측의 분양 수입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SK건설 관계자는 “일반분양분이 예상보다 적어져 사업 수지를 맞추기 어려운 데다 의결권을 가진 주민이 너무 많아 사업이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며 “사업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다시 개발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SK건설의 사업 중단에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지역 빌라·주택 원주민연합회 박성기 회장은 “그동안 악취와 두통을 참아가며 SK건설의 사업지 토지 오염 정화작업을 참아왔는데 주민들과 상의도 없이 사업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SK건설 부지는 유류 저장시설이 있던 곳이어서 개발을 하려면 먼저 오염물질을 제거해야 한다.

한편 정부는 도시개발 사업장의 지분 쪼개기를 막기 위해 공유지분 소유자를 5명 이내로 제한하는 도시개발 업무지침을 지난해 말 만들었다. 도시개발구역 공람 공고일 이후 쪼개진 지분에는 입주권이 나오지 않는다. 용현·학익 2-1구역은 아직 공람 공고 전이다.

함종선 기자

◇지분 쪼개기=건물이나 땅·주택의 소유자를 구분 등기를 통해 여러 명으로 늘리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소유권이 공유 지분 형식으로 여러 개로 나눠지기 때문에 지분 쪼개기라 불린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은 지분 쪼개기가 제한되지만 도시개발 사업은 공람 공고일 이전에 지분 쪼개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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