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tyle] 존 갈리아노, “패션은 내 존재의 이유” … 여행에서 영감 얻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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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디자이너로 명성
전도연·김혜수도 고객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올 봄·여름용 ‘오트 쿠튀르(고급맞춤복)’ 드레스.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소개됐다. 붉은 색 실크에 금빛 실을 수 놓은 이 드레스는 패션쇼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사진上>.
짙은 핑크색의 실크 드레스로 올 봄·여름용 오트 쿠튀르 패션쇼에 선보였다. 재킷 형태로 디자인된 상의는 다양한 색상의 구슬과 시퀸 등으로 장식돼 있다<사진下>.

영국 지브롤터에서 태어난 존 갈리아노는 흔히 ‘천재 디자이너’로 불린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23세 때인 1984년 영국의 유명 패션학교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그는 졸업 작품 발표를 겸한 패션쇼에서 내놓은 모든 의상이 런던의 유명 부티크에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그는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내놨고 데뷔부터 평단과 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셈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단 브랜드로 데뷔 3년 만인 26세 때 ‘영국 패션 디자이너 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패션계의 중심 인물이 된 데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역할이 컸다. 세계 최대의 명품 그룹인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의 수장 아르노는 95년 그를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로 앉혔고 이듬해 말 크리스티앙 디오르를 맡겼다. 영국 출신 디자이너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이를 두고 “프랑스 문화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아르노 회장은 갈리아노의 천재성을 높이 샀다. 아르노는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10월 29일자 33면)에서 “존 갈리아노를 처음 봤을 때 디오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디오르에 제격”이라며 “훌륭한 디자이너였던 디오르를 닮았으면서도 또 자신의 창의성도 독특해 보였다”고 평했다.

그가 디오르의 의상을 맡은 뒤 레드 카펫의 세계적 여배우들이 앞다퉈 그를 찾았다. 니콜 키드먼, 케이트 블란쳇, 샤를리즈 테론 같은 유명 배우들이 모두 그의 의상을 입고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김혜수·전도연·김아중 등 국내 여배우들도 레드 카펫에서 디오르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강승민 기자

크리스티앙 디오르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 국내 최초로 인터뷰

존 갈리아노(47·사진)가 한국에 온다.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인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그가 한국을 찾는 목적은 서울시 해외 홍보 CF 촬영을 위해서다. 거대 명품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면서 화려한 외모와 천재적인 재능으로 주목받는 그가 서울시의 해외 홍보 CF에 출연할 경우 주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이틀에 걸쳐 CF 촬영에 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포목상, 패션상가, 경복궁 등을 둘러 보며 ‘지루하지 않은 선·색·면 모든 것에서 생명이 살아 숨쉬는 느낌, 서울은 나의 작업에 영감을 준다’는 주제의 CF에 등장할 예정이다. 서울시와 CF 출연에 대한 가계약을 맺은 그는 24일 방한할 계획이었으나 갑작스러운 감기·몸살로 방한 일정을 연기한 상태다. 갈리아노 측 관계자는 7월께로 날짜 조정을 요청했으며 이에 대해 서울시와 협의가 진행 중이다. 갈리아노를 e-메일을 통해 미리 만났다. 국내 언론과의 첫 인터뷰다.

[사진=Jean-Baptiste Mondinoⓒ]

-한국에 대해 알고 있나.

“물론이다. 한국은 정말 아름답고 가슴 설레게(inspiring) 하는 곳이다. 한국은 개성이 매우 강하고 또 부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내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건축물이다. 고색창연한 것과 첨단의 것이 공존한다. 사람들도 매우 개성이 뚜렷해서 더 오랜 시간 탐구해 보고 싶은 곳이다.”

-의상 디자인에도 아시아적인 것을 많이 사용해 왔다.

“아시아가 너무 좋다. 여느 곳과도 같지 않고 또 한 번 가봐선 절대 알 수 없는 곳이 아시아다. 서울 역시 마찬가지이고.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매혹적인 곳이다. 곧 방문하게 돼 더욱 기쁘다.”

-여행도 자주 하나.

“내 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나는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이 정말 즐겁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또 거기서 아이디어와 경험을 얻어 온다. 여행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하고 또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완벽하게 유혹할 만한 것이 바로 (여행을 통해 알게 되는) 모험과 실험이라 생각한다.”

그는 중앙일보 e-메일 인터뷰에 답변을 보내며 사진도 첨부했다. “인터뷰 기사에 꼭 같이 실어 달라”는 요청도 덧붙였다. 보내온 사진은 단 한 장. 선택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사진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지런히 정리한 콧수염도 여전했고, 머리에 왕관을 올린 채 금발의 가발까지 얹은 모습이었다. 화려하게 연출한 사진에서 그의 재기가 느껴졌다. 그는 패션쇼에서도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대개 다른 디자이너들은 패션쇼가 끝난 다음 무대 인사를 할 때 최대한 단정하게 차려입고 수줍은 듯 재빨리 무대 뒤로 숨어 버린다. 하지만 그는 매번 다른 컨셉트의 의상을 갖추고 런웨이 끝까지 천천히 걸어 나오면서 관객과 충분히 인사를 나눈다. “패션쇼에서 스스로를 너무 드러내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 모습은 패션쇼에서 나와 내 스태프들이 함께 일하고 또 탐험한 것에 대한 반영입니다. 디자인을 하면서 점점 빠져들고 또 진화하는 내 모습을 봅니다. 사람들은 내가 끝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또 그것에 대해 걱정을 하겠죠. (무대 인사를 하면서) 나는 내 고객들을 보고 또 내가 꿈꿔왔던 현장을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에 대해 더 배우기도 하죠. (이건) 연인관계 같은 겁니다. 전 정말 낭만적인 사람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게 너무 좋아요.”

그의 패션 디자인은 그의 외양만큼이나 화려하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의 디자인에 대해 “곡선이 물결치고 또 휘감아 돌아가는 실루엣의 드레스는 여성을 더욱 섹시하게 만들어 준다”고 표현했다. 갈리아노는 “패션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며 “또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바로미터가 바로 패션”이라고 덧붙였다. “패션은 끊임없이 내 주변의 환경에 따라 진화하고 또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경제 상황에 따라서도 물론 변하죠. 결국 패션은 우리 시대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또 그 그늘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겁니다. 패션은 현재에 옷을 입히는 작업이니까요.”

젊은 시절부터 주목 받아온 패션 디자이너 갈리아노는 ‘천재’라고 불리는 데 부담을 느끼진 않을까. 그는 “여전히 패션계에는 내가 존경하는 분들도 많고 그런 칭호는 모차르트나 피카소 같은 수준의 사람들에게나 어울린다”고 겸손히 말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늘 명심하는 건 더 창의적이어야 하고 스스로에게 더욱 솔직해야 한다는 거예요. 더 유명해지려고 디자인하기보다는 더 멋진 옷을 만들기 위해 내가 존재한다는 거죠. 전 옷 자체가 스타였으면 좋겠어요.”

크리스티앙 디오르를 부흥시킨 지 11년째. 그는 결국 어떤 디자이너로 남고 싶을까. “아직도 못한 것이 많은 걸요 뭐. 다만 원하는 것은 나중에 사람들이 절 기억할 때 이랬으면 좋겠어요. ‘갈리아노가 인간을 아름답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큰 꿈을 꿨다’고 말이죠. 전 모든 것이 아름다웠으면 해요.”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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