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노조, 최대표 생방 불참에 반발

중앙일보

입력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MBC측과 사전에 약속했던 생방송 출연을 갑자기 취소한 것과 관련, 노조가 성명서를 내는 등 MBC 측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MBC는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대표를 초청, <탄핵정국 특집 토론-여야 대표에게 듣는다>(밤 11시 5분)라는 생방송 토론프로그램을 방영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7일 오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측이 갑자기 불참을 통보하면서 프로그램 자체가 무산됐다. 최 대표는 공문을 통해 "본인은 당대표 사퇴의사를 이미 밝힌 바 있어 이 프로그램 출연에 적절치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달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MBC측은 지난 15일 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출연을 요청했다. 당시 MBC측은 최 대표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사이의 1대 1 토론을 제의했으나 최 대표의 거부로 당초 계획을 바꿔 최 대표와 패널 3명이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진행방식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애초부터 출연을 거부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최승호)는 17일 저녁 긴급 성명서를 냈다. 이 성명서에서 MBC노조는"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방송에 대한 횡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면서 "시청자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모습에서 우리는 국민들에게 외면받는 정당의 실체를 목격한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대다수 국민을 대변한다고 강조해 온 거대 야당들의 수준이 정말 이것밖에 안되는지 참담한 심정조차 든다"면서 "방송과의 대결 구도를 정략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거대 야당은 규탄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조는 "방송의 공신력에 잇달아 상처를 주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해 회사차원에서 엄중한 항의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시청자를 무시하는 거대야당 규탄한다>

- "탄핵 정국 긴급 토론" 결방 사태에 즈음하여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방송에 대한 횡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당초 오늘 밤 11시부터 방영 예정이었던 생방송 프로그램 "탄핵 정국 긴급 토론-여야 대표에게 듣는다"가 결방됐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오늘 오후 돌연 불참을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 시간에 예능국 파일럿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하기로 했다. 지난 14일 민주당 김경재 의원이 방송 20분전에 돌아가는 바람에 "이슈 앤 이슈"가 불방된 데 이어 두 번째 파행방송이다.

김경재 의원은 제작진이 민주당 당직자에게 분명히 상대방 패널이 누구인지 미리 얘기를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전달받지 못했다는 핑계를 내세우며 불참을 통보했다.

시청자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모습에서 우리는 국민들에게 외면받는 정당의 실체를 목격한다. 아울러 방송의 공신력에 잇달아 상처를 주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엄중한 항의를 촉구한다.

<100분 토론>팀은 이미 이틀전인 지난 15일 최병렬 대표에게 토론 참여를 제의했다. 최대표는 그 날 저녁 프로그램 출연 의사를 전해왔다. 그러나 열린 우리당 정동영 대표와의 1대1 토론은 곤란하다고 밝혀 제작진은 최대표와 세 명의 패널이 묻고 대답하는 형식의 토론을 준비했다. 아울러 최대표가 18일에는 한나라당 대표직을 사임하는 만큼 가능한 한 방송 날짜를 빨리 잡아달라고 해서 이 제안도 수용했다.

오늘 최대표를 시작으로 내일은 열린 우리당 정동영 대표와 똑같은 포맷의 토론을 준비해왔고 사전 예고까지 내보냈던 제작진은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처했다.

최대표의 돌연한 토론 거부는 한나라당이 그동안 요구해온 공정 방송이 그저 음흉한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허울좋은 포장이었을 뿐 실제로는 탄핵 정국에 대해 침묵해달라는 얘기에 다름아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당의 대표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상황을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불참을 통보하기 위해 제작진에게 보낸 다섯 줄 짜리 공문에서 최병렬 대표는 본인은 당대표 사퇴의사를 이미 밝힌 바 있어 이 프로그램 출연에 적절치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달라고 말했다. 최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던 마당에 이같은 해명은 참으로 궁색하다. 최대표의 말대로라면 자신이 출연할 테니 방송 일정을 빨리 잡아달라고 했던 이틀 전의 결정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그저 의아할 뿐이다.

'도토리 키재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나라당이 한때나마 토론 참여를 검토했던 것과는 달리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처음부터 토론를 거부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내부에선 이 시점에서 토론 프로그램에 나가봐야 득 될 게 없다는 논의가 오고 갔다고 한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대다수 국민을 대변한다고 강조해온 거대 야당들의 수준이 정말 이것밖에 안되는 지 참담한 심정조차 든다. 멍석을 펴 줘도 외면하는 두 당이 과연 공정 방송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지, 또 그들 주장대로 탄핵에 찬성하는 국민들의 뜻을 대신할 자격은 있는지 되묻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시야에서 사라짐으로써 표적이 없어져버린 거대 야당은 방송이라는 새로운 표적을 만드는 데 급급하고 있을 뿐이다. 방송과의 대결 구도를 정략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거대 야당은 규탄 받아 마땅하다.

경영진에도 요구한다. 회사측은 두 번씩이나 본사 프로그램을 파행으로 몰고 간 두 당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강구하라. 여론의 흐름이 불리해지면서 방송을 상대로 한 두 당의 장난질은 점점 기승을 부릴 것이다. 여기서 쐐기를 박지 않는다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의한 파행 방송은 되풀이 될 것이라는 게 우리의 우려이다. 한나라당은 당장 회사측에 자신들의 대표 경선 과정 생중계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방송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수 있는 당신들의 노리개가 아니다. 불순한 의도 속에 이뤄지고 있는 방송 흠집내기에 맞서 문화방송 노동조합은 전체 방송 노동자와 함께 강력한 투쟁을 다짐한다.

2004. 3.17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